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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브 번역/진지

Silent tonight -4-

도서관알바 2017. 2. 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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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쪽은 이미, 벚꽃이 진 것 같다


작년 봄엔, 가로수의 벚꽃이 만발한 것을 보며 도쿄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제 아마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런 마음으로 멍하니 걷고 있었다


벚꽃은 물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였다


신칸센, 그리고 1시간에 2대밖에 오지 않는 일반 전차, 거기에 3시간에 2대씩 오는 버스까지 타고서 여길 찾아왔다


늘어진 벚꽃전선이 뒤쫓아 와, 생일을 맞이할 무렵 만개했었다



하지만, 벚꽃은 여기서도 잿빛이었다



  「니시키노 선생님 올해 벚꽃은 분홍색으로 보였으면 좋겠네요」



오전 진료를 마칠 무렵, 후미씨가 놀리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벚꽃이 잿빛으로 보여요』


작년의 마키에게, 별로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보이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뿐


그 때, 후미씨와, 이후로 쭉 마키의 외래를 지도해준 호시 선생님은 얼굴을 마주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호시 선생님은 외가쪽 친척으로, 아버지 대부터 이곳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몸도 정신도 아직 건강하지만, 어찌됐든 이제 70세가 가깝다


본래라면 슬슬 은퇴할 시기이지만, 그렇게 되면 이 마을이 곤란해진다


자식은 의사가 되었지만 마을로 돌아 와주지 않아서, 누군가 이 의원을 맡을 사람 없을까, 하던 중에 마키가 소개되어 온 모양이 됐다



소개라고 하니 듣기엔 좋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친족의 눈이 닿지 않는 『밖』 으로 내놓기 싫었던 것이다


올 해 정월, 하루 생가에 갔을 때, 『엄마를 닮아가고 있구나』 라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해주었다



마키는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를 닮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딘가 자기와 닮은 부분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귀가 닮았다던가


결국은 X선 사진을 보면서 다리의 뼈 모양이 닮았다던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애착이 가는 딸도 끝이라는 것일 것이다



니시키노 병원 같은 건 분가의 사촌이 이으면 된다


아마 35살이 됐을 사촌은 대학병원에 자릴 잡은 외과의이고, 이미 결혼도 해서 5살짜리 자식도 있다


그 사람에게 맡기면 아무런 걱정도 없을 것이다


마키가 18살까지 살았던 집도, 두개의 별장도 전부 줘버려도 좋다


나는 이 마을에서 맘 편한 장소를 제공 받았으니, 그 답례로 이 마을 사람들에게 안심을 줄 것이다



이제, 이걸로 됐어






ㅡ2년 전 봄ㅡ



  『마키 선생님』



갑자기 이름을 불려 고개를 든다


퍼뜩 일어났지만 자신이 불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좁은 상자 속에 있다


수중에 휴지가 들려 있다


백의를 입고 변기 위에 앉아 있다


차례로 상황을 인식해간다


아무래도 일을 보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잠들어버린 것 같다



외과의를 원하는 자신에게, 6개월이나 되는 내과의 로테이션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알고 있어


여기서의 지식이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파파가 연수의였을 땐 외과만 배웠으면서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져버린다


기운이 빠지자, 외과 로테이션 시절의 수면부족을 지금 와서 보충하려는 듯 잠이 쏟아진다


화장실에서 나가려다, 이름을 불린 것을 떠올린다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은 모를 테니, 요컨대 뒷담화라는 녀석일 것이다


귀를 기울여 대화를 듣는 것에 집중한다



  『K대에서 마키 선생님이랑 함께 다니던 애한테 들었어요』



말하고 있는 건 동기 연수의중 한명이었다


요츠야 부근 개업의의 딸인 것 같다


동기끼리 모여 몇 번인가 술자리를 가졌지만, 보다시피 『원장의 딸』 인 내 앞에선 아무도 솔직한 이야기 따윈 해주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고 2차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개업의의 딸이라는 정도밖에 모른다


나머지는 뭐, 나보다 키가 작고 목소리는 크고, 나보다 미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뭘?』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마 제1내과의 수간호사


지금 50세 정도로, 마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신인 간호사로 이 병원에 찾아왔다


50세가 넘은 사람들이 『○○장』 같은 직함을 달고, 마키의 어린 시절부터의 역사를 쥔 채로, 이 종합병원에 몇 명이나 근무하고 있다



  『마키 선생님, 레즈래요 고등학교 때부터 「여자친구」 가 있다는데』



동기의 목소리는 어딘가 들떠선 즐거운 듯 했다



  『그래? 세상에, 원장님 불쌍해라』



수간호사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동정하고 있었다



마키는 문을 차고 나갈 수 없었다


불쌍해?


불쌍하다니, 뭐가?


불쌍하다니, 파파가?


쥐어짜듯이 중얼거리며, 두 사람이 화장실을 나가길 기다렸다


나간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가슴 속이 떨리고, 손끝이 떨리고, 그리고 볼이 떨리기 시작했다



  「뭐가 불쌍하다는 거야!!」



손을 씻으며 거울에 대고 소리쳤다


호노카와 행복해지기 위해 의사가 되려는 것이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외동딸은 불효한 것일까


외동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버지에게 있어서 불행한 것일까


동정 받아야 하는 일인 것일까


잠자코 의사가 되서, 적당한 데릴사위 상대라도 데려와서, 니시키노 종합병원을 이어가는 것이 외동딸의 사명이라고 하고 싶은 건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아버지가 『불쌍하다』 고 듣게 되는 걸까



………



  「호노카, 오늘, 계속 집에 있었어?」



휴일 전날, 호노카와 둘이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자랑스러운 40인치 텔레비전이지만, 시끄럽기 때문에 틀어놓고 있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호노카가 아침부터 청소와 빨래를 해주고 있었다


엉망진창이던 방은 상당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재떨이도 비어 있다


방 안에서는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있었지만, 호노카는 탓하지도 않고 깨끗하게 비워주었다



  「빨래하고 나서는 코토리쨩이랑 점심 먹고 왔어」



기대어온다


어깨를 내준다


『오늘, 사이드테일이네』


『오랜만이지?』


『응, 귀여워』


속삭이며 머리를 만진다


『고마워』


간지러워 보인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있을까


계속 이러고 있을 생각인데 흔들리고만다


내과 로테이션이 되고 나서는 퇴근시간이 꽤나 빨라져서, 호노카를 만날 날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 목적이 호노카를 만나고 싶기 때문인 건지, 호노카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어서인 건지, 잘 모르게 되어버렸다



  「진짜 맛있었어」



호노카가 스마트폰을 켜고, 호텔의 점심 뷔페 영상을 보여준다


새우라던가 게라던가, 최근 들어서는 먹지 못한 것들이다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는 먹는 것이 한정되어버린다


동기나 팀의 회식이 있긴 하지만, 모두 자신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귀찮아진다


신경 쓰이는 건 그쪽뿐만이 아니야 라고 하고 싶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들은 전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코토리는 결혼 안 한대?」


  「글쎄, 아직은 이대로가 좋다는데 코토리쨩, 가끔 말하긴 하지만, 결혼은 별로 동경하지 않는대」



호노카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


거듭해 물어보려다 그만둔다


거짓말하지 않는 호노카의 속내를 들춰내는 것은 무섭다


하지만, 만약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헤어져야 하는 걸까


끝까지 반대해야 하는 걸까


애초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타당하긴 한 걸까


헤어진다면, 이제 의사가 되려는 목적은 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가 편해지는』 것일까



레일 위라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합리화 하고 있는 걸까



  「마키쨩, 왜 그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호노카의 파자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어떻게 할 수 없다면서도 파묻는다



  「저기 있지, 호노카」


  「응응」


  「니시키노종합병원 원장이 아니라, 작은 진료소 선생님이라도 괜찮아?」


  「왜 그래 갑자기? 혼자 개업하는 건 힘들다고 했던 거, 마키쨩이다요?」



그랬지


눈을 감고 뺨을 내민다


함께 뺨을 부비면서, 호노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빗질 해준다


마키의 응석을 받아주며, 최근 자주 이렇게 해주고 있다



  「마키쨩이 열심히 노력해서 개업하는 거면 호노카는 따라 갈 거야 강아지는 있지, 소중한 사람을 따르는 동물이니까」



그 속삭임에 가슴이 메여온다


작은 진료소 같은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호노카가 소중히 여기는 건, 나의 『노력』 이라는 것


고등학교 때, 호노카 손에 이끌려서 스쿨아이돌이 되고부터, 쭉 나는 노력해왔다


의학부에 붙어서 6년간 공부에 매진하고, 보란 듯이 국가시험에 합격해 여기까지 왔다


쭉 노력해온 자신이니까 호노카는 사랑해준 것이다



무서워


지금 당장이라도 포기해버릴 것 같은 자신이 무섭다



  「힘낼 테니까」



압박에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이를 속이려는 듯이 끌어안았을 때, 테이블 위의 피치가 울렸다


오후 10시


이런 시간의 콜이라면 담당 환자의 급변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미안


호노카의 귀에 사과의 말을 속삭이고 피치를 잡는다


솔직히, 내가 서둘러 가도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와인을 그다지 마시지 않아 다행이다


『다녀올게』


일어서서 옷장을 연다


일단 택시부터 부른다


호노카는 아무런 불만 없는 얼굴로 『다녀와』 라며 키스로 배웅해준다


호노카는 병원에서의 마키의 평가를 전혀 모른다


그저, 원장의 외동따님인데, 이런 밤중에 나갈 정도로 『노력하고 있다』 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현재 마키가 속한 곳은 호흡기 내과이다


폐의 병증으로 상당히 약해져 있어서,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던 환자의 상태가 급변했다고 한다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어


택시를 타고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추운 와중에 급히 가는 건 귀찮지만, 신출내기 연수의라곤 해도 『주치의』 니까 어쩔 수 없다



병원 앞 사거리에서 내린다


일단 담배에 불을 붙인다


몇 번 피우고 휴대용 재떨이에 비틀어 넣는다


스프레이로 냄새를 제거하고, 매우 다급하게 온 것처럼 병동으로 달려간다


탈의실에서 파란색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소독을 한 뒤 집중치료실로 뛰어 들어가자, 이미 수술은 클라이맥스를 치닫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현장에 마키가 거들 일은 거의 없게 된다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정보를 들어, 오후 11시를 지나고 있지만 친족들에게 연락을 해서 모이게 한다



그리고 2시간 뒤, 일단은 조수로 서포트를 했지만, 환자는 회복하지 못했다


수술실 안에 미적지근한 허망감이 감돌고,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것처럼 심전도가 평평해졌다


도구와 장비를 정리하는 소리가 차갑게 울리기 시작한다


동기들 중엔, 너무 친해져, 환자가 죽고 나서 통곡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자신의 무력함에 환멸을 느껴 보름가량 식사도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마키는 이미 3번, 담당 환자의 『죽음』 을 겪었지만, 슬프거나 분함 감정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마키 선생님」


  「네」



사망 진단서 작성


문서작업은 잘 한다


병세나 의료 내용을 유가족에게 설명


세상사 이야기는 서툴지만, 이런 판에 박은 듯한 설명이라면 괜찮다


조금 국어책 읽기라도 좋다


환자는 80세를 넘긴 여성으로 남편은 이미 사망한 상황


아들 식구가 떨어져서 살고 있지만, 도내이기 때문에 금방 도착해 있었다


수배한 장의사가 도착할 때까지 여기서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나서 영안실로 옮겨 헌화나 약간의 의식을 치르게 된다



내일은 아침부터 호노카랑 데이트를 할 생각이었는데 아침까지 돌아갈 수 없을 듯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섭섭해진다


그런 목소리로 가족에게 사망선고를 한다


10대나 20대의 환자였다면 분명 욕을 들었을 지도 모른다


딸을 돌려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자식이 죽은 게 네년 탓이라며 덤벼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분이, 20분이 지나도, 고성이 오가는 일은 없었다



  『또~ 원장 따님이 담당이야? 연습상대도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는데에?』



회진 때마다 죽은 이 할망구가 짜증내던 표정을 생각하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환갑을 넘긴 노인은 귀찮다


일단 『싫다』 라고 못 박히면 그대로 끝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다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이상, 이쪽이 먼저 로테이션을 옮기던가, 그쪽이 먼저 뻗어버리던가, 어느 한쪽이니



『이제 갈게 오늘, 예정 없으면 같이 있자』



장의사의 왜건이 시신을 병원에서 집으로 옮겨갔다


동쪽 하늘이 밝아질 무렵,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호노카에게 『응석꾸러기』 메일을 보냈다


하얀 입김과 연기가 섞여 차가운 새벽 공기에 녹아간다


뭘까, 이 텅 빈 느낌


이 아무래도 좋다는


망가져버린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망가져 있었던 걸까


모르겠어


일단은 졸려


담배를 끄고 택시를 불렀다


담당 환자가 하나 줄었지만, 『대체 환자』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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