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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브 번역/진지

Silent tonight -6-

도서관알바 2017. 2. 3. 14:16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oveliveus&no=2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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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2년 전 겨울ㅡ



  「마키쨩! 냄비랑 재료 사왔어!」



사건이 일어난 것은 크리스마스날 밤이었다


눈이 내릴 듯이 추웠다


호노카와 만나기 전부터 정해놨지만, 감기 기운도 있어서 외식은 하지 않았다


호노카가 슈퍼에서 재료를 사와, 둘이서 찌개를 해 먹기로 했다


테이블에 버너를 올려놓고, 에이프런 차림의 호노카가 야채와 생선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있다


베란다에서 녹색 침엽수를 가져와, 별님과 작은 양말을 장식하고 텔레비전 받침대에 놓아두었다


조용히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놓고, 마키는 소파에서 잡지를 보고 있다



마치 부부 같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쑤셔왔다



  「좋-아, 다 됐다-!」



2인용의 작은 냄비에 건더기가 빽빽이 차 있다


대파, 배추, 표고버섯, 당근, 팽이버섯, 두부


대구, 방어, 새우, 가리비, 굴, 정어리 완자


뚜껑을 덮고 버너에 불을 붙인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화이트 와인으로 건배를 한다


학창시절처럼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쳐 있던 마키도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이 된다



  「옷, 슬슬 먹어도 될 거 같아!」



보글보글 냄비가 끓어오른다


호노카가 장갑을 끼고 뚜껑을 연다


하얀 김이 올라온다


판도라의 상자 같아


문득 생각이 들었다


국자와 젓가락을 사용해 호노카가 익은 것들부터 덜어주었다


웃고 있다


나와는 달리 무얼 하든 즐거워 보인다


8년이나 함께 했던 연인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북돋아주는 연인


큰 싸움도 없었다


질리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다


이대로 함께 있고 싶어


쭉 함께 있고 싶어


시선이 맞아 키스를 요구한다


와인으로 젖은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는다



  「정마알, 디저트는 찌개 다음이라구?」



못써요


고교 때와 변하지 않은 미소로 타이른다


스물다섯이 넘었음에도 천진난만함은 잃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와는 달리 호노카와 함께 있으면 언제든지 스쿨아이돌이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화이트와인을 마신다


손끝이 진정하질 못하고 호노카의 사이드테일과 가슴에 닿고 싶어 한다


담배인지 술인진 모르겠지만, 조금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


이런 손으론 피아노도 칠 수 없고, 하물며 수술은 더욱 더 할 수 없다



그래도 괜찮아


이제 호노카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마키쨩이 안달 나 있으니깐 조금만이야?」



식사 도중이었지만 호노카쪽에서 목에 매달려왔다


그리고 깊은 키스를 해주었다


부드러워


진심어린 포옹


지금 참아야 이따가 더 즐거울 거라고 타이르기에, 침대에 가고 싶어지는 것을 겨우 참아내, 냄비 쪽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미소 지으며 배추의 속 부분을 집어 올린다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에 놓여있던 피치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껄끄러운 전자음이 병원의 비상상황을 알린다


급한 용건 이외에는, 휴일 밤에 이 피치가 울리는 일은 없다


물론 나가야 한다


담당 환자 누군가의 용태가 급변한 것임이 틀림없다


주치의로서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이 온기 가득한 시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끝마쳐야 한다는 말


하지만, 그것이 일이다


그런 직업을 고른 것이다


행복한 시간이라는 건, 그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자신에게의 포상인 것이니까



그런 거, 알고 있어



  「마키쨩, 병원이야?」



냄비는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다


호노카가 난처한 듯이 바라본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밤


이제 선물을 교환하고, 함께 침대에 들어가, 내일 아침까지 연인답게 보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


그것이 깨지려 하고 있다


달려가 봤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많은 당직의들이 있고, 그 중엔 하나둘 우수한 선생님들도 섞여 있다



  「안 나가? 환자한테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별로」



별로



처음으로 무관심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피치는 같은 음으로 계속해서 긴급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 소리만이 방 안을 울리고 있다


뭔데 그게


호노카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 보다 중요한 용건 따위 있을 리 없잖아


이렇게 멋진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긴급한 일 따위 있을 리 없어


있을 리 없어


있을 리 없어






있을 리 없는 거지!?






  「어떻게 알아? 무슨 일 있으니까 전화 온 거잖아?」


  「그건 그런데 정말 긴급한 상황이면 내가 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이번엔 무기력이 흘러나왔다



담당 환자의 용태가 크게 급변했다면, 까놓고 얘기해서 마키가 할 수 있는 일 따윈 없다


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아는 범위 내에서 응급처치를 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달려 나가봤자잖아



피치가 계속해서 울린다


처음엔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던 호노카의 눈이 제 자릴 잡는다


나가지 않으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마키에게 그녀다운 곧은 말로 내질러온다



  「환자는 마키쨩을 의지하고 있잖아!? 무조건 가야 되는 거잖아!?」


  「의지 안 해! 모두 나 같은 게 담당하는 거 싫다고 하고 있다구!」



마지막으로 무책임이 뿜어져 나왔다



피치가 그쳤다


마키의 의도대로, 이로써 당분간은 가지 않아도 되게 됐다


하지만, 무책임하다는 건 호노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고교시절, 스쿨아이돌을 내던지려던 태도를 책망 받고나서, 호노카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도, 사회에 나가서도, 한다고 정한 것은 끝까지 해내는 여자가 되었다


그런 호노카가 무책임을 동반한 어리광 따윌 용서할 턱이 없었다



  「그런 거 상관없잖아!? 아픈 사람은 의사선생님한테 밖에 기댈 수 없잖아!? 서투르고 말주변이 없어도 기술이랑 지식으로 신뢰받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마키쨩 그랬잖아!?」



마키가 학생 시절 취해서 말했던 이상이었다


근처의 바였던가, 호노카도 거하게 취해선 그것을 기쁜 듯이 들어주었다


이것도 벌써 5년 전의 이야기였다


호노카는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마키에게는, 그 때 폼을 잡으며 이야기했던 이상 따위 이미 마음속 깊이 묻어버린 현실에 불과했다



  「지식이나 기술이 있는 건 당연한 거야! 지식도 기술도 없는 의사 따윈 없어! 사람과 마주하는 걸 좋아하고! 호기심이랑 향상심이 있고! 호노카처럼 긍정적인 사람이 아님 안 돼! 나 같은 사람은 의사 같은 거 될 수 없다구! 이제 아무래도 좋아!!」



실컷 소리쳤다


의사가 될 수 없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말로 형태화했다


오랜만에 소릴 질렀더니 목이 단숨에 쉬어버렸다


격하게 기침을 하고 가슴을 감싸 눌렀다


헐떡이며 호노카를 노려봤다


호노카도 한동안 맞받아 노려봤지만, 그 시선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은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되었다



커다란 눈이 슬픈 듯이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한다


호노카도 마키도 확인한다



  「호노카는, 호노카는, 마키쨩이 의사 선생님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니까 따라온 거라구...」



울먹이는 그 말이 마키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는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그런 거 아냐』 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이제 의사 선생님이 되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해주었다면, 당장이라도 병원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호노카가 고른 말은 어느 쪽도 아닌, 마치 후회하는 것처럼 들릴 뿐이었다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따라왔다


노력하지 않는 자신은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난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



  「그럼! 그러면! 이제 어디든 가버리라구!!」



정신 차리고 보니 내쫓으려 하고 있었다


호노카를 위해 노력해왔는데, 부정당한 순간 버림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호노카에게 있어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니시키노 마키가 아니도라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 진정한 연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연인 따윈 전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안 되는 걸까」



호노카가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포기하지 않는 호노카에게서 체념이 흘러나왔다


아무 대답도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피치가 울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성가심에, 마키는 달려가 그것을 집어 전원을 끄고 카펫에 내던졌다



정적에 침묵이 녹아든다


호노카가 일어서서 코트와 가방을 집어 들었다



  「호노카!? 잠깐! 어디 가!?」



호노카가 애석하게 웃는다



마키가 준 선물은 물론, 자신이 가져온 선물마저 버려두고, 호노카는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마키의 외침에 응하지 않은 채로 현관으로 향해 간다


모든 것이 느린 동작이었지만, 자신이 사라져버리라고 했기 때문에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었다


탕,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키는 혼자가 되었다


자신을 감싸 안고 카펫 위에 무릎부터 무너져갔다



  「호노카!? 저기, 호노카!? 호노카!!」



질문을 하는 듯, 쥐어짜내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푹 엎어졌다


끝났어


두개의 톱니바퀴는 마침내 산산조각이 나 보이지 않는 저편까지 날아가 버렸다


소파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찌개는 거의 다 남아 있고, 희미하게 하얀 김을 뿜고 있었다


그것도 곧 식어갔다



한참을 울다 지친 마키는 호노카에게 주려던 선물을 포장 채로 쓰레기봉투에 던졌다


학생 같은 숄더백이나 백팩만 가지고 있는, 그런 연인을 위해 고른 5만엔 정도의 핸드백을, 자포자기로 쓰레기봉투에 쳐넣었다



  「호노카아… 호노카아… 호노카아아…」



그리고 또 의미 없는 부름을 되풀이했다


호노카가 두고 간 선물을 떠올리고, 양손으로 들 정도의 꾸러미를 까끌해진 손가락으로 열었다


예쁘게 뜯지도 못하고 난잡하게 찌익찌익 포장지를 찢어냈다


안에는 정성스레 접힌 검은색 파우치가 있었다


누구나 본 적이 있는 브랜드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마지막 선물


마지막


자신을 그렇게 타이르며 열었다



『슬슬 어엿한』 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가 되면, 그러면 입어보고 싶어


언젠가 그렇게 말했던 검은색 트렌치코트가 들어 있었다



………



크리스마스가 끝난 뒤, 마키는 얼이 빠진 채로 집과 병원을 오갔다


호노카를 잃어 이제 의사가 될 이유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의사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는 없었다


그렇다고, 남은 3개월 정도로 뒤쳐진 것을 따라잡을 전망도 없었다


없는 것들뿐이라, 더 이상, 무얼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 K대 병원으로 옮기려고 5학년 때 임상실습에서 엄청 신세를 진 야마자키 선생님이, 이쪽으로 오지 않겠냐고 메일 보내주셨어!』


  『나는 이비인후과에 갈려고 했는데, 로테이션 때문에 산부인과랑 고민 중이야 부인과에 키노시타 선생님 있잖아? 그런 선생님한테서 배우고 싶어』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초기 연수를 마치고 어디로 갈 것인지가 화제이다


귀를 틀어막아도 들린다


니시키노병원에 지망하는 과로 들어가는가 하면, 더욱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대학 병원으로 옮기려는 사람도 있다


진로 선택에 있어서는 마키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 외과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처럼 피부과를 선택할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할까, 어째선지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언젠가는 어딘가에서 우수한 의사를 서방으로 둘 것이다


어머니와 같은 원장 부인이 될 것이다


이제, 그걸로 좋지 않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깔려 있던 평탄한 레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이제 귀찮아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건 이젠 귀찮은 일이다






정월에도 생가에 오지 않았던 마키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라고 아버지가 호출한 것은 1월 중순이었다


아버지라 해도, 직장인의 세계로 보면 『사장』 으로부터의 직접적인 호출이다


가기 싫었지만 휴일을 골라 집을 찾아갔다


18살까지 살았던 집이, 4개의 통로로 나누어진 한 블록을 담으로 둘러싼 저택이, 마치 남의 집인 양 느껴졌다



적어도 『돌아왔다』 라는 느낌은 없었다



  「왜?」



거실에서 부모와 마주 앉는다


마키에게 호의적인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굳은 표정을 한 가정부가 조용히 3인분의 홍차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난감한 듯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마키는 어릴 때부터 이 거실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있을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식사는 다이닝룸에서 하고 있었고, 가족이 모여 놀던 기억도 거의 없었다


3명밖에 살지 않는데, 넓은 테이블과 1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얻어온 상장과 트로피는 제대로 꾸며놓고 있었다


여긴 거주공간이 아닌 응접공간이었다


니시키노 패밀리가 얼마나 부유한지를, 얼마나 재능 넘치는지를 손님들에게 과시하는 장소밖에 되지 않았다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아버지는, 니시키노 병원의 원장은 그렇게 입을 열었다


당신 딸이니까


반사적으로 떠올랐지만 그렇게 돌려주진 않고, 표정으로 귀찮음을 나타냈다


여기에서는 용무가 없다


용무가 있다면 얼른 말했으면


그런 딸의 갑갑함을 헤아렸는지, 단순히 급한 성격 때문인지,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파고들어왔다



  「봄 이후로, 너를 돌봐줄 생각은 없다」


  「하아?」



잠자코 있으려 했건만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너무 뜻밖의 말에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무슨 소릴


재차 말을 이으려는 마키를, 고명한 신경외과 의사이기도 한 아버지가 재빨리 가로막아 이유를 열거했다



  「품행・태도・협조성・향상심・환자의 평판 이 2년간, 어느 하나도, 모두에게 좋은 말을 못 들었어 이 이상, 내 병원에서 연수를 하게 둘 순 없다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구나」


  「하아!? 뭐야 그게!? 그거 『해고』 라는 거지!? 파파 병원에서 『해고』 된다는 거지!?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딸한테 그럴 수 있어!?」



감정에 파묻혀 외쳤다


눈썹을 한껏 찌푸리며 소리쳤다


곧 목이 아파와 콜록거렸다


홍차를 마시자, 가정부가 다가와 채워준다


그것을 또 단숨에 마셔버린다


요즘 왠지 계속해서 목이 탄다


어머니가 자신과 닮은 째진 눈을 찡그린다


외동딸이 『해고』 됐다는 것이 아닌, 그 건강을 슬퍼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 이상, 니시키노의 간판을 믿어주는 환자들을 너에게 맡길 수 없다」


  「뭐야 그게!? 맡긴다던가 맡기지 않는다던가! 애초에 맡기려고 한 건 파파쪽이잖아!?」



거의 반사적으로 대꾸를 하자, 아버지는 딸의 억지를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맡기려고 한 건 분명하다만, 강요한 기억은 없구나 네가 『진심으로』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했다면 반대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 거냐? 스스로 의사가 되려고 생각했던게 아닌 거냐? 피아니스트는 힘들겠지만, 의사라면 『될 수 있어』 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 거냐?」



아버지가 아닌, 어디까지나 원장의 눈을 하고 바라보고 있다


외동딸이라고 하는 온정을 완연히 배제하고 있다


반박할 힘은 남아 있지 않고, 하물며 논리 따위는 전혀 찾을 수가 없어서, 마키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점차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부터는, 빨리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을 잡은 손이 약간 떨려, 거기에 부모님의 시선이 쏠린 것을 눈치 챘다



  「뭐야? 이제 대꾸할 말도 떨어졌나?」


  「다른 병원 찾아볼게」



공허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넓지만 소문의 연계는 빠른 세계이다


아키바에 있는 니시키노 병원의 외동딸이 자신의 병원에서 후기 연수를 받지 못했다는 정보는 메세지게임처럼 확산될 것이다


도중에 왜곡되고 다양한 악평을 탄생시킬 것이다


날 고용해주는 병원을 찾긴 힘들 것이다


『찾아볼게』 라곤 했지만, 그럴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거두지 못한 사람을 밖에 소개시켜줄 수는 없다」


  「그럼 그러던가」



그 나이에 의사 자격만 가지고 무얼 시작한단 말인가


대학 시절 소개받은 과외 외에 아르바이트 하나 한 적 없는 경험치로 어떻게 일할 생각인 건가


간단한 그 대답에 아버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욕도 없는 주제에 억지를 부리는 외동딸을 매우 유감이라는 듯이 보고 있다



그래


단지 유감이라는 듯이



  「저기, 마키? 이 이상 파파 얼굴에 먹칠은 그만두지 않을래?」



파파


이번에는 태도를 싹 바꾸어 아버지의 얼굴을 한다


자신의 외동딸을 『해고』 해야만 한다


그 시점에서 아버지는 아마도 빛나는 인생에서 가장 최대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여기서 마키가 의사마저 포기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으로 전락한다면, 더욱 치욕을 덧붙이게 되는 것이다



파파를ㅡㅡ매년 크리스마스의 별장에서, 마키가 준비한 양말에 선물을 넣어준 산타를ㅡㅡ그 방자함으로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그만두지 않을래?


부드러운 얼굴로 변해선, 마키라는 가시를 뽑으려 한다


비겁하다


교활하다


비난이 머릿속을 떠돌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것은, 깔려진 레일을 탈선한 것은 자신이라는 빚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입술을 불쾌하게 악물며 옆머리를 만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럼 어쩌면 좋은 건데」



결국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마키는 아버지의 뻔한 회유책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맨션도, 집세 전부를 아버지가 부담하고 있다


월 15만 정도의 맨션이다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곧바로 사는 곳을 잃게 된다


결국, 어차피 난 아가씨구나


아가씨라는 건, 경제적으로 뛰어난 부모가 『편』 을 들 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가씨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마마의 친척, 먼 친척이긴 한데, 마을에서 진료소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러면서, 아버지는 A4 사이즈의 종이를 불쑥 내밀어왔다


사진도 없고, 주소와 전화번호, 간략한 지도만이 적힌 종이였다


마지못해 시선을 떨어트렸다


주소를 눈으로 좇다가 무심결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어디야 여기? 여기서 뭘 하라는 거야?」


  「선생님이 이제 70이 가까우셔, 물려받을 의사를 찾고 있는 것 같구나」


  「뭐야 그게!? 마마 친척이라며, 마마는 본 적 있어!?」


  「기억은 없어 어릴 때 장례식에선가 봤을지도 모르겠는데」



장난치지 마!


눈을 한껏 끌어올려 화를 냈지만, 부모님의 결정을 엎을 수는 없었다


이건 사실상 명령이었다


초기 연수는 수료시켜준다


하지만 니시키노 병원에선 일을 시켜주진 않는다


다른 병원에 소개하진 않는다


의사를 단념하는 걸 용납하진 않는다


이 의미 불명의 시골 진료소에 가서 일해라



  「초기 연수만은 내 권한으로 수료시켜 줄게 필수과는 끝났으니 문제될 건 없다 다만, 내일부터는 이제 담당환자를 보지 않아도 좋아 회진도 하지 않아도 좋아 수술이나 컨퍼런스에 참여할 필요도 없어 총무부에 넣어줄 테니, 봄까지는 외래의 기초라도 공부해 두거라」


  「건강도 제대로 챙겨야 한다? 살 많이 빠졌지?」



부모님이 말을 죽 늘여놓는다


눈앞의 광경에 현실감이 희미해져 『알겠어』 라고만 중얼거린다


뭘 『알겠다』 는 걸까


아무것도 몰랐다


대화가 끊기자마자 소파에서 일어섰다


가정부로부터 코트를 받았다


잠자코 등을 돌려 생가를 뒤로 했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똑바로 걸을 수 없었다




아키바의 뒷골목이 비뚤어진 미궁 같았다


어디를 어떻게 걸어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맨션의 방으로 돌아와서 바로 시골의 소개장을 찢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몇 달 후의 자신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직장이라고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자신의 프라이드 따윈 아가씨라는 토대 위에서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런 벼랑 끝에 몰려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대신, 크게 웃었다



마키는 선반에 손을 뻗어 새로운 레드와인을 꺼냈다


사람을 찌르려는 듯한 얼굴로 코르크스크류를 삐걱삐걱 비틀어 넣었다


거칠게 뽑아내곤 잔에 부어 단숨에 한 잔을 비웠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웃음이 계속 나왔다


연인도 떠났다


외과의사라는 꿈도 깨져버렸다


종합병원의 아가씨라는 타고난 지위까지 잃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단 2년도 안 돼 전부 잃고 말았다



  「아하하하하! 바보 같아! 의미를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다구!!」



절규를 하며 담배 한 갑 정도를 한꺼번에 피웠다


와인도 1병을 비우고 침대에 파묻혔다


이번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꼈다


시트를 손으로 내리치고, 손끝으로 할퀴며 날뛰었다


지칠 때까지 반복하며 엎드려 얼굴을 뒤덮고 울었다



울다, 울다, 울다 지쳐서



  「호노카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을 쥐어짜내고, 아직 밝은데도 정신을 잃듯이 잠에 빠지게 되었다



………



겨울 끝 무렵



점점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잿빛이 된다


작년 이맘때, 정든 이 병원을 답사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부터 자신이 활약할 찬란한 스테이지 같았다


스치는 환자 전부를 미소 짓게 만들자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역시 원장님의 딸이라고, 모두에게 존경의 눈길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난다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옷을 갈아입고 두꺼운 화장을 하고 나선다


졸업 선물로 받은 빨간 쿠페로 병원에 도착한다


연수의실의 로커를 열어 백의를 입는다


환자 앞에 나서지도 않고, 공부회나 증례 검토에 나서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백의를 입을 필요도 없다


그래도 여기서 백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만이, 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나에겐 의사의 길밖에 없다


그래서 백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안녕-! 어머, 마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부장 회진에 간신히 세입이야! 옷, 마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동기들이 하나둘 모여온다


당직이었던 사람 외에는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한다


인사만을 나눈다


모두의 시선이 힐끗힐끗 전신을 찔러온다


그것들이 만약 활시위를 떠난 살이었다면, 꼼짝도 못하고 고슴도치가 되었을 것이다


  『마키 선생님, 모가지래』


직접 들은 적도 없고, 물어본 적도 없겠지만, 이런 정보라는 건 반드시 어딘가로 퍼져가는 법이다



모두가 연수의실을 떠나 자기의 로테이션 과로 걸어간다


팀을 짜서 아침 회진을 향한다


마키는 어디도 가지 않고, 외래 진료에 관한 서적을 읽거나, 컴퓨터로 정보를 모으거나 한다


『척』 을 한다


모두가 발을 맞추어 쥬니어에서 시니어로 나아가고 있는데, 발버둥도 되지 못하는 공부 따위 할 마음이 들 리가 없다


논문이라도 읽고 있는 듯한 얼굴로 소개장에 적힌 마음을 검색하거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OO현 XX군 △△정


하도 검색을 하다보니 기억에 박히고 말았다



직접 만든 느낌의 마을 공식 페이지


딱 보기에도 쇠퇴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인구는 약 4500명


처음 봤을 때는 눈을 의심했다


니시키노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원장에서부터 청소부 할아버지・할머니까지 합하면 1000명에 가깝다


그런데, 한 마을에 사는 사람이 4500명이라니 무슨 말이야?


이런 마을이 정말로 실존할 리가?


그것보다-, 여기서 의사가 된다구?



주변에 좀 더 큰 마을이 있는 듯 하다


역이 있어서 전차가 다니고 있다


라곤 해도, 큰 쇼핑센터, 아울렛 몰이 있는 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조금 더 큰』 작은 시골마을이 있을 뿐이다


이른바 『종합병원』 이라 불리는 건 일단 있는 것 같지만, 절대로 큰 규모는 아니다


조사를 할 때마다 우울함과 속상함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게 된다


2개비나 피우고 나서야, 서고에서 책을 빌려 연수의실로 돌아온다


빌려온 책을 읽지도 않고, 멍하니 스마트폰을 켠다



그런 식으로 쫓아내놓곤 어울려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뻔뻔한 것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날 밤을 기점으로, 호노카의 메일은 한 통도 오지 않는다


있을 리가 없지


수긍하고 고개를 떨구는 나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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