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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브 번역/진지

Silent tonight -7-

도서관알바 2017. 2. 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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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1년 전 봄ㅡ


어느새 봄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겨울부터 아무런 진보도 없이 초기 연수는 끝나가고 있다


춘분에 수료식이라는 행사가 열리고, 국가가 정한 연수를 마친 의사로서 자립하게 된다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를 정하고, 어엿한 한 사람의 의사로서의 출발지점에 서게 된다



그런데 마키만은 모두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아무도 모르는 마을로 날려간다


외래진료 따윈 해본 적도 없는데, 작은 진료소에 가서 의사 생활을 이어갈 운명이 되어 있다


바보 같아


계속해서 중얼거리면서도, 동요는 숨길 수 없다


실패하면 끝이라는 부담감


환경이 크게 바뀌는 것에 대한 불안


생활수준이 크게 떨어져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



무엇보다, 정말로 외톨이가 돼버린다는 공포



  『사사키씨, 필요 없다고 했는데 장미꽃다발이라니~ 내 캐틱터랑 안 어울린다 그랬는데』


  『나도 와인 받아버렸어 회진 때 좋아한다고 했던 거 기억해준 것 같아』


  『당신이야말로 얼른 퇴원하라구요!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말이지 힘내서 훌륭한 선생님이 되세요 라고 하니까, 역시 울먹이게 되더라!』



선배들에게 다 넘겨버리고 담당 환자도 없었다


동기 녀석들은 담당한 환자에게서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받거나, 가족들에게서 선물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니시키노 마키라는 초라한 연수의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원장의 외동딸이니까, 알랑거리는 사람이 나올 법도 했지만, 마키가 『해고』 됐다는 소문은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기에, 밀려난 아가씨에게 흥미를 가질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초기 연수의 끝이 다가왔다



수료식은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행해졌지만, 인사 정도만 나누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지나쳤다


증서를 받은 뒤의 파티에서는, 플로어의 떨어진 흡연 공간에 혼자 들어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되는 것이 싫어 술은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동기 녀석들은 긴자에서 2차를 한다지만, 참여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1개월 후에는 이 집도 사라진다


도쿄도 사라진다



무얼 가지고 가자


무얼 두고 가자


그런 생각도 귀찮아, 조만간 업자에게 부탁하여 모두 처분할 생각이었다


푹신푹신한 카펫도, 넓은 더블 침대도, 음질이 좋은 풀세트 오디오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빨간 쿠페도, 전부 팔기로 했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뭔가가 『필요』 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뭐, 가장 필요 없는 건 니시키노 마키 라는 무능한 여자임이 분명하지만


조금 전 한 번 그쪽에 전화를 해봤더니, 진료소 간호사라는 아주머니가 받아, 근처에 딱 좋은 빈 집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어떤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빈 독채를 월 3만엔으로 빌릴 수 있다고 했다


그 집에서 살려고, 정말로 쓸 만한 것들만을 나중에 몇 개 사두었다


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떻게든 도쿄에서 발악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쪽은 선택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 자신에게 마취를 걸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태양이 길어짐을 느끼게 된 저녁, 필요 없는 옷이나 책 등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던 중, 인터폰이 손님을 알렸다


호노카가 돌아간 뒤로 처음 울린 인터폰이기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반응하고 만다


어쩌면 호노카가 돌아왔을 지도 몰라


당황하며 응답한 마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혀를 찼다


그래도 농성을 할 입장은 아니라, 별 수 없이 잠금장치를 풀어 맨션으로 맞아들였다



도어벨이 울리며 문이 열리자, 환갑이 다가온 어머니가 익숙한 에르메스 핸드백과 길쭉한 봉투를 들고 있었다


혼자 왔나


무심코 어머니 어깨 너머를 두리번거린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오지 않은 듯 하다


하기야, 원장의 권한으로 수료한 낙오자에게 흥미 따윈 없겠지만




긴자에서 파티니까 그쪽에 가 있는 걸까


그야 그렇겠네


망신스런 외동딸보단, 자신의 병원에서 성장한 희망찬 연수의들이 귀엽게 보일 게 당연하니



  「뭐야? 무슨 일인데? 긴자에 안 가구」


  「뭐냐니 수료 선물이지 돔페리 사왔어」



바보 취급 하는 건가


미간을 찌푸리는 마키의 옆을 지나 방으로 들어선다


거실로 향하는 어머니의 등을 쫓는다


그 등이 기억에 없을 정도로 작게 보인다


문을 열고, 어머니는 찬찬히 안을 살펴본다


뒤돌아 눈을 가늘게 뜨며, 8자 주름을 더 깊게 한다



  「대단한 방이네 나도 이런 시절이 있긴 했지만」


  「하? 그런 소릴 하려고 온 거야?」



이불이 널부러진 침대


카펫에 던져진 옷


닫혀진 커튼


먼지를 뒤집어쓴 사이드 보드


테이블에는 마시던 와인 병


담배꽁초 투성이의 재떨이


방 전체의 고약한 냄새


그럼에도 원인이 어딘지 잘 모르겠어서, 공기 탈취제와 스프레이를 써서 처리하고 있었다


1LDK의 다른 한 방은 공부용 서재로 썼었는데, 최근에는 문도 열어보지 않아서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어머니가 구석구석 발을 움직여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다


마키는 그것을 눈으로만 쫓고 있다


어머니의 몸짓 하나하나가 서투른 연기처럼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화가 나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진다


어머니는 다다미 바닥의 곰돌이씨를 집어들었다



세 살 때, 산타씨에게 선물 받은 곰돌이씨


손발이 부드러운 곰돌이씨


앉은키 30센티 가량의 곰돌이씨


처음에는 새하얬지만 매일같이 안고 만졌던 탓에 회색이 되어버린 곰돌이씨


어릴 때부터 물건에 집착하지 않던 마키가, 소중히 여기던 단 하나, 곰돌이씨



그런데도, 언제부터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던 건지 기억나지 않는 곰돌이씨



  「뭐, 내가 방을 엉망으로 방치해둘 때는, 대개 연애가 원인이었지만 말이지 대학 시절, 어디 이사장이라는 여자랑 기를 쓰며 남자 쟁탈전을 벌였었는데」


  「마마의 옛날 얘기는 어찌됐든 좋으니까 뭐 하러 왔어?」



어머니가 팡팡 곰돌이씨를 털어낸다


우수수, 많은 먼지가 흩날려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곰돌이씨를 침대 머리맡에 오도카니 앉힌다


어린 시절 마키가 성을 내며 집어 던진 것과 같이



  「잔 없니?」



질문은 무시된다


기가 차다는 듯이 부엌 위의 선반을 가리킨다


어머니가 그쪽을 향해 가, 샴페인을 열어 와인 잔에 붓고,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와 소파에 앉은 마키에게 건넨다


황금색 액체가 작은 거품을 내고 있다


뭐 하러 왔어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어머니가 옆에 앉는다



  「축하하러 왔다고 했잖아」


  「축하 같은 거 할 상황이 아니잖아!? 바보 취급 하는 거야!?」


  「부인과도 거쳤지? 자기가 낳은 아이는 무조건 귀여운 법이야」


  「태어난 순간은 그런 것 같네」



샴페인을 단숨에 마시곤 싸늘하게 응시한다


테이블에 놓아둔 돔페리에 손을 뻗어, 어머니가 바로 채워준다


자신의 잔을 비우곤 그쪽도 채운다


마치 경쟁하려는 듯이 3잔씩을 마신다



  「실패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트러블이 많아」


  「미안하게 됐네」


  「파파 얘기야 뜻대로 되지 않으면 초초해져서 일단 외면하려고 하니」


  「그 덕에 이쪽은 볼 수 없는 곳까지 쫓겨났는데?」



외모는 어머니와 비슷하지만, 마키의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을 멀리 두려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알고 있어


아버지는 우수한 신경외과의사이자, 기민한 경영자이다


조부 대에는 종합병원뿐이었지만, 지금은 간호시설과 데이서비스까지 전개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마 큰 좌절 같은 건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이런 곳에서 멋지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거꾸러져 있다


면허로 보면, 연습면허를 받았어도, 도로 위를 운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닮았다는 이유로, 우수한 아버지가 글러먹은 딸을 억지로 외면하겠다는 태도는 용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미안해」



어머니가 옆에서 이쪽을 보며 사과했다


사과라는 선택은 뜻밖이었지만, 곧이곧대로 놀라기에는 너무 피폐해져 있었다


애초에 사과 받고 싶지도 않았다


짜증이 한계치에 도달해서 얇은 담배곽을 집었다


한 대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생각해보니 부모님 앞에서 피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시니어가 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헤에, 본 적도 없는 시골 선생님에게 맡기는 건 옳구?」



비꼬는 듯이 하얀 연기를 토해낸다


어머니는 불쾌한 태도를 보이는 딸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글쎄, 만난 적도 없으니 70세에 가깝다는 것 말고는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 그래도 말야, 지금의 너를 의사로 키우려면, 파파나 마마를 전혀 알지 못하는 선생님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는 마키를 두고 어머니는 일어섰다


그리고 베란다와 거실을 구분하는 큰 창문을 열었다


차가움이 없는 봄바람이 불어 들어와, 탁한 방의 공기와 뒤섞인다


좋은 바람


담배 끄고 열린 창문 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쭈그려 앉아 움직임을 멈춘 어머니의 배후에서 슬쩍 들여다본다


눈에 들어온 것에


시선과 목소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포기하려는 게 아냐」



어머니는 화분의 마른 흙을 집어 올렸다


호노카가 떠나고 한 번도 물을 주지 않은 화분이었다


베란다에 쓰레기를 낼 때를 놓쳐온 화분이었다


호노카가 심었던 화초는 이미 목숨을 잃었다


시클라멘과 마거리트에는 꽃이 폈던 흔적조차 없었다


크리스마스 후 장식을 쥐어뜯어서 베란다에 방치한 코니파는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호노카와의 연애 그 자체로 보이기 시작해, 애틋함이 흘러넘치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아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어머니가 일어섰다


몸이 무거운 듯이 일어서는 모습에 나이가 실감 됐다


그리고 마키와 마주 앉았다


40대에는 장을 보러 가면 『자매에요?』 라는 말도 들었는데, 지금은 확연히 어머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환갑 가까이 되서, 시집보내는 것도 아닌데 외동딸을 멀리 보내야만 한다


나라고 해도 괴로워


주름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 그렇게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파파 역시 같은 마음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



  「알고 있어」



중얼거렸다


그런 마키의 어깨 한쪽을 두드리고, 어머니는 천천히 방을 떠났다


혼자서 돌아갔다


남은 돔페리를 잔에 따라 마시고, 따라 마시고, 눈 깜짝할 새에 비워버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침대에 두고 간 곰돌이씨를 꼭 껴안았다


바닥에 방치해둔 것을 사과하려 머리를 쓰다듬어 봤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곰돌이씨의 가슴을 향해 외쳤다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있다구!! 피해자 같은 얼굴 하지 말란 말야!!」



………



도쿄역 오전 7시



마키는 나른한 표정으로 홀을 걷고 있었다


이제 5년이 되어가는 회색 양털 코트를 입고, 왼손에는 작은 검은 핸드백을 들고, 오른손에는 붉은 캐리어 가방을 굴리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 중 한 겨울의 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은 마키 단 한 사람이었다


점퍼를 입은 사람은 있었지만 옷감은 꽤 얇은 옷이었다


도쿄는 벚꽃도 피어 있고 봄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저쪽은 보름 정도 계절이 늦게 찾아오는 듯 하다


며칠 전 전화했더니 아직 눈이 남아 있다고 했다



해외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캐리어인데, 필요한 만큼의 옷가지과 속옷, 평소 사용하는 화장품 정도 밖에 들어있지 않다


부피가 큰 것은 곰돌이씨뿐, 이 캐리어는 마키의 발걸음과는 정반대로 가벼웠다



몇 개 가지고 있던 명품 가방이나 손목시계도, 무거운 의학서도, 좋아하는 소설도, 마음에 들어 샀던 잡화나 악세서리도, 짐이 될 만한 것은 전부 처리했다


이사업체를 수배할 필요도 없었다


이불과 석유스토브 정도는 준비할 수 있다고 하여, 그런가요 라고 답하고 침구류도 꾸리다 내팽개쳤다


어설프게 무언가를 가져갔다간 비참함이 커질 뿐이니까



정리를 마치고 며칠이 지났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비즈니스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있다


오늘도 그 호텔에서 도쿄역까지 멍하니 걸어왔다


곳곳에 벚꽃 나무가 심어져, 경쟁하듯이 만개해 있다


그러나, 마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일 뿐 아름다움도 즐거움도 느낄 수 없었다



『8시 신칸센으로 도쿄를 떠나』



조금 전, 보낼까 말까 망설이던 메세지를 호노카에게 보냈다


봄이 찾아오기 전에 보냈다면, 어쩌면 호노카는 붙잡아주었을지도 모른다


도쿄에 남아달라고 따뜻한 말로 멈춰세워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키는 그렇게 되는 것이 싫었다


호노카에게 『열심히 하자』 라는 말을 듣는 것이 싫었다


이미 노력하는 대신 멀리 떠나가기로 정했는데, 도쿄에 남아 『열심히 하자』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설득 당할 시간이 없도록,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보냈다



그만큼이나 메세지를 무시당하는 것도 두려웠다


이제 『끝』 으로 확정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토요일이라 자고 있을지도 몰라 라고 변명할 수 있을 듯한 시간에 보냈다



그러면서도 질릴 정도로 꼴사납게도


어쩌면 바래다주러 오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호노카의 집에서라면 여유롭게 시간이 맞을 타이밍을 골라 보냈다


토카이도・토호쿠・죠에츠・나가노ㅡㅡ여러 신칸센의 어디에 타고 가는 지까지 신중하게 써넣었다


진짜 배웅하러 오면 어떤 얼굴을 해야 좋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바래다주는 연인이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다



너무 한심해 자신을 조소하며, 마키는 멈춰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선물용 고구마양갱을 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 플랫폼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2시간 정도 신칸센을 타고, 그리고 2시간 정도 재래선을 타고, 거기서 또 1시간 정도 버스를 탄다


시골로 갈수록 차편도 적고, 환승시간을 딱딱 맞추어도 6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일본은 좁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나아가도 바다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의외로 넓을지도 모르겠다



4월 첫 주말


가족과 학생이 많아, 아직 봄방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소 가득한 사람들 뿐


실패하여 낙향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매점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산다


시골에 가면 IC카드를 사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깨를 부딪칠 듯한 인파도 없을 것이다



고개를 든다


벌써 안내판에 타야할 신칸센이 안내되고 있다


눈앞에 한대의 전차가 출발하고, 안내판의 그것이 한 칸 위로 올라선다


정차역은ㅡㅡ우에노, 오오미야...


그 다음부터는, 어떤 곳인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곳들조차도 지나서, 텔레비전의 여행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봤던 마을에서 내린다


그리고 더욱 듣도 보도 못한 재래선을 타고 간다



얼굴 따윈 보고 싶지 않다


다만 눈을 뗄 생각도 없다


아버지의 본심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안전선 뒤로 물러나주세요』



마키의 신칸센이 찾아온다


앞에는 여행을 떠나려는 듯한 중년 부부가 있다


뒤에는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부모가 5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다


아버지가 카메라를 들고, 딸과 신칸센을 찍으려고 대기중이다


나는 도쿄를 떠나간다


아버지의 『배려』 로 쫓겨난다


눈앞에 늘어선 빌딩들도 마지막이다


설 정도에는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얼굴을 내비치기만 하고 바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이다


맨션 계약은 끝났다


친정마저도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다



분명 고양이는 장소에 따르는 동물인데, 안심하고 설 장소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전차가 플랫폼에 들어옵니다! 안전선 뒤로 물러나주세요!』



요란스런 방송이 끈덕지게 『물러나』 달라고 호소한다


처음 보는 색의 신칸센이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여자아이가 미소 지으며 V사인을 하자, 아버지가 즐겁게 셔터를 누른다


전차가 속도를 늦추면서 마키의 눈앞을 지나간다


필름이 한 장 한 장 넘어가듯 여러 개의 창문들이 흘러간다


이윽고 브레이크를 걸고 정차한다



이것이 은하철도라면 좋을 텐데


아무런 고민 없는 세계로 데려다준다면 좋을 텐데


어째서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이 지금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걸까


다시 한 번 플랫폼에서 보이는 도쿄의 풍경을 기억 속에 우겨넣는다


별 볼일 없는 빌딩들뿐이지만, 저쪽으로 넘어가면 이런 큰 건물을 보는 것도 할 수 없으니까



공기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린다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자신을 그렇게 타이르며 캐리어 손잡이를 쥔다


적어도 한 마디 정돈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보고 한숨을 쉰다


아무것도 없다


끝났어


연인은 이제 없다


어차피 멀리 떠날 거야


어차피 곁에 있어 줄 리 없어



모든 것을 잃은 나니까, 연인이 가장 먼저 없어지는 게 당연한 거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문을 통과한다


티켓에 적힌 좌석을 찾아간다


곧바로 발견한다


창가


플랫폼이 보이는 창가였다


가벼운 캐리어를 들어 머리 위 선반에 집어넣는다


거기엔 호노카한테서 받은 트렌치코트도 들어 있다


호노카와 찍었던 사진을 모아둔 앨범도 들어 있다


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자신을 따라준 사람을 향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호노카」



연인


그렇게


아직 연인이길 비는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밖에선 출발 벨이 울리고 있다


등받이에서 테이블을 내리고 샌드위치와 캔커피를 올려놓는다


끝났다


끝내버렸다


살짝 현기증이 일고 시야가 빛을 잃어간다


마키의 마음이 『체념』 의 스위치를 넣자,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빛을 잃고 만다





바이바이 


호노카



바이바이


노력파의 멋진 연인을 찾아



바이바이


8여년의 첫사랑이 사라져간다


손가락을 감아 따뜻한 캔커피를 쥔다



바이바이


신칸센이 천천히 레일을 미끄러져가기 시작한ㅡㅡ그 때





『마키쨩!!!』



창문 너머로 이름을 불러와 마키는 확 고개를 들었다



  「호노카?」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인다


방금 전까지 잿빛으로 변했던 시야가 금세 전부 색깔을 되찾아간다


움직이기 시작한 바깥 풍경에, 호노카가 차가운 금속 벽 너머로 이름을 부르고 있다


마키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호노카는 빈손이었다


한 손에 낡은 지갑만 들고 있었다


흰색 스웨터와 청바지라는 심플한 옷차림이었다


갈색 머리는 묶지 않았고, 메이크업도 하지 않았다



  「호노카!?」



메일을 읽고 바로 집에서 뛰쳐나왔다는 건 얼굴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문은 닫히고, 전차는 저 먼 곳을 목표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말을 주고받는 것도 손을 잡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다음 신칸센을 기다리는 인파의 줄을 뚫으며 호노카는 내달리고 있다


고등학교시절처럼 전력으로 내달리고 있다



  『마키쨩!! 마키쨔아아앙!!』



아직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하게 들린다


『플랫폼에서 뛰어다니지 마세요!』


방송이 분명히 호노카를 꾸짖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플랫폼을 뛰어다니는 다 큰 어른을 꾸짖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빠져든 호노카를 멈추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했다


진심으로 달리고 있었다


갈색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붉히며, 마키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두꺼운 창문에 달라붙었다


떨리는 입에서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주위의 승객 같은 건 생각치도 않고 대답했다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노카!! 호노카아!! 호노카아아!!!」



유리를 깰 듯한 기세로 외쳤다


다른 승객의 폐 따윈 개의치도 않고, 목이 쉬도록 거듭해서 외쳤다


신칸센은 마키를 조용히 시키려는 듯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창문 유리에 손과 얼굴을 붙여, 호노카의 모습을 눈에 새겨놓으려 한다


눈물이 맺힌 시야 가장자리에서, 호노카가 마지막으로 두 손을 메가폰 모양으로 만들어 외쳤다


커다란 입을 힘껏 벌려 외쳤다


이제 목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지만, 호노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8년이나 어울렸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바보 플랫폼에서 뛰면 민폐잖아」



목이 쉰 채로 중얼거렸다


질린다는 듯한 미소를 띠곤, 마키는 비틀거리며 시트에 쓰러졌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서 머리를 감싸 안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계속해서 훔쳐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해서 울었다


아침을 먹는 것도 잊고, 호노카가 전하려고 한 말만을 한결같이 되씹고 있었다



『파이토다요!!』



『열심히 해』 같은 소린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다


응원이나 격려 같은 소리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호노카가 전차 턱 밑까지 질주하며 던졌던 메세지는, 호노카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메세지는, 마키 자신이 호노카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기에, 호노카가 쭉 말했으면 해서 선물했던 가사이기에, 들리지 않는 척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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