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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브 번역/진지

Silent tonight -9- (完)

도서관알바 2017. 2. 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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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을 떠올리자, 마키는 키득키득 웃고 만다



호시 선생님은 일을 하기 위해 온 것임이 분명한 마키를 평범하게 진찰했다


문진을 했다


회전의자에 앉혀 목의 안쪽을 보거나 심장 소리를 듣거나 했다


침대에 눕혀 배와 손발을 촉진했다


초진(初診) 환자처럼 다룬 뒤, 선생님은 카르텔을 쓰면서 신임 여의사임이 분명한 마키를 향해 진단을 내렸다



그것이 진단인지 뭔진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한 달 정도 이 마을에서 살아 보게 일을 하는 건 그 다음으로 하자구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니까, 어딜 가야 뭘 얻을 수 있나 찾는 것부터가 힘들 게야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배가 꼬르륵 거리고 있는데, 근처에 우동이라도 먹으러 가지 않을까?』



근처의 우동집에 가 산사이우동을 대접받았다


잔뜩 부루퉁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우동의 진한 국물이 몸에 스며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대로 후미씨의 안내를 받아, 마키는 지금 살고 있는 독채로 끌려왔다


이불과 석유히터와 약간의 가구 정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불만이 넘쳐 오히려 아무 말도 못하고,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하자 마키의 셋집이 되었다



  『니시키노 선생님, 오늘은 슬슬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시면 진료소나 제 휴대폰으로 연락해주세요 참, 수도가 얼지 않도록 겨울철에는 조금 열어두도록 하구요』



첫날, 후미씨는 그것만을 말하고 돌아갔다


그 무렵엔 저녁때가 되어 있어서 쇼핑을 갈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마키는 우두커니 남겨졌다


하지만, 도쿄에 있을 때처럼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편의점도 없다


패스트푸드점도 없다


카페도 없다


밤까지 하는 슈퍼도 없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적어도 걸어갈 만한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내일은 아침부터 옆 동네에 가서 중고라도 좋으니 자동차를 사기로 했다


희망 따위 하나도 없는 주제에,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어중간한 시간에 점심을 먹었더니 배도 고프지 않았다


목욕을 하고 스마트폰을 충전시켜놓자,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정도밖에 없었다


푹신푹신하지 않은 얇은 이불이었지만, 마키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대로 해방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곯아떨어졌다



………



몇 가지 규칙을 정하고, 마키는 50년도 더 된 것 같은 낡은 민가에서 독신 생활을 시작했다


식재료를 사서 아침저녁은 스스로 밥을 지어 먹는다


11시에는 자고 6시에는 일어난다


이불은 매일 펴고 매일 갠다


1주일에 한 번은 청소하고 1주일에 두 번은 세탁한다


날씨에 상관없이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외출한다



살아간다는 것에 몰두된 나머지 술과 담배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밥이 정말로 맛있어지고, 연수의 시절 10킬로 가량 줄었던 체중이 조금씩 돌아왔다


혈색이 좋아져 짙은 화장은 필요 없게 되었다


스스로도 『건강』 이라는 걸 실감할 정도가 되었다



주 1회씩은 호시 선생님께 진찰을 받았다


『슬슬 되겠네』 라며, 골든위크가 끝날 무렵부터 진찰의 시중을 들기 시작하게 되었다


환자들에게 차례차례로 소개시켜주었다


처음엔 눈치를 봤지만, 마을 사람 모두에게서 신뢰를 받고 있는, 그런 선생님의 제자라는 이유로, 환자들은 마키의 『연수』 에 순조롭게 협조해 주었다



  『외래에선, 물론 중증을 놓치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선생님께 진찰을 받았으니 안심」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네』



친정의 병원에선 배우지 않았던 문진과 진찰 기술을 기초의 기초부터 배워나갔다


여름 즈음부터는 10대부터 40대의 젊은 환자를 혼자 진찰하게 되었다


가을부터는 어린 아이와 노인의 진찰도 맡아, 차로 왕진까지 하게 되었다


수술이나 검사 같은 건 없었지만, 환자의 이름을 부르며, 『니시키노 선생님』 이라 불리며, 『건강하세요』 와 『감사합니다』 를 반복하며, 겨우 의사로서 스타트라인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마키가 호노카에게서 받았던 마지막 선물의 소매에 팔을 넣은 것은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슬슬 어엿한』 이 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ㅡ그리고



여기로 흘러 들어온 지 1년여가 지났다ㅡ






  『니시키노 선생님』


  『생일 축하해요』



마키는 케이크 상자에 붙은 메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5번째로 케이크를 준 사키쨩, 꽤나 내성적인 여자아이라, 처음엔 잘 접근할 수가 없었다


겁을 먹게 한 적도 있었다


연수의 시절에 소아과를 로테이션할 때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왜 저희 아이를 노려보시는 거예요!?』 라고 혼난 적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어른인 체 하던 마키는 아이들을 어딘가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이 녀석들과는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으니까, 또래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노는 건 정말로 고역이었다


서투른 것을 서투른 채로 두고 살아왔더니, 사회에 나서자마자 모든 것에 손바닥 뒤집듯이 돌려받고 말았다



하지만, 후미씨가 알려준 대로, 이름을 기억하고 눈높이를 맞춰주어 끈기 있게 이야기를 들어주니, 점차 마음이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통하니,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솔직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겉치레 말만 잔뜩 주고받았던 자신에게, 20대도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이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해주세요』



사키쨩의 문장을 손끝으로 덧대어 써 내려간다


찬찬히 확인하듯이 써 내려간다


째진 눈을 부드럽게 내려 몇 번이고 따라간다


노력하고 있는 걸까



  「나, 노력하고 있는 거야?」



중얼거리자,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이 마을에선 드문, 커다란, 바이크만이 낼 수 있는 육중한 엔진 소리


게다가 눈이 쌓인 계절은 바이크로는 제대로 달릴 수 없다


대부분이 버스나 자가용으로 이동하고, 가끔 보는 바이크는 집배원이 타는 원동기 정도



이 근방은 밤이 되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바이크의 경적소리가 마키의 귀에 닿는 단 하나의 소리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눈앞의 지방도로를 타고 이쪽으로 향하는 걸까, 초봄의 공기를 진동시키며 조금씩 커져 간다


고개 쪽에는 아직 눈도 남아 있고, 근처의 산줄기를 질주할 수 있는 스카이라인은 골든위크까지 개통하지 않는다


투어링으로 통과할만한 장소도 아니다



마키는 메세지카드에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동시에, 신호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엔진 소리가 바로 거기서 끊겼다


한순간의 정적 뒤, 가볍게 아스팔트를 딛는 소리가 났다



  『끝나버렸어!?』



여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끌려서 마키는 현관 쪽을 향했다


확실히 진찰시간은 끝났지만, 남아 있는 마키 자신이 돌아가야 하니 문은 열려진 채였다



그래서 『진찰 종료』 의 플래카드 아래 있는 긴 손잡이만 밀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진료시간이 끝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에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누구라도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왓! 아직 열려있네!」



문을 여는 소리


철컥 하는 낯익은 소리


그것과 함께, 광택 있는 빨간 헬멧을 겨드랑이에 낀 여자가 뛰어들어왔다


적어도 이 마을에선 본 적 없는 여자였다



지퍼를 목까지 꽉 올려놓은 새카만 가죽 재킷


카키색 두꺼운 방한 바지


발끝이 닳은 와인색 부츠


전부 처음 보는 차림이었지만, 애처럼 보인다고 꼬리를 만들지 않게 된 갈색 머리칼과 빨려들어갈 듯한 커다란 눈을 보고, 마키는 밀려들어오는 기억의 파도에 얼어붙고 말았다


호흡조차 잊어버리고, 입은 백의만큼이나 새하얀 의식으로 눈앞에 나타난 사람과 마주했다



  「에헤헤 와버렸어」



마키가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이 사람은 학창시절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어했다


입은 열렸지만 아직 말이 나오진 않는다


함께 지낸 8년여의 시간과, 함께 지내지 않았던 1년여의 시간이, 억눌렀던 감정들을 뒤죽박죽 얽혀서 털실뭉치처럼 되고 말았다


그래도 시선은 마주한다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어떤 태도로 나타내야 좋을 지 알 수 없어서, 마키는 고개를 숙여 국어책 읽기 같은 어조로 물었다



  「초진이네요 보험증은 있으세요?」


  「엣!? 앗, 있어! 있어요!」



이 사람은 빨간 헬멧을 소파에 굴려놓고, 등에 맨 배낭을 가슴 쪽으로 돌렸다


지퍼를 열어 안을 뒤적이다가, 방해가 된다는 듯이 가죽 장갑을 벗어던졌다


지갑에서 카드 보험증을 꺼내곤, 계속 고개를 떨군 채인 마키에게 건네주었다


『코우사카 호노카』


기계로 새겨진 글자가 꿈이 아니라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마키는 전혀 감정을 토해내지 않고, 눈을 깜빡이고 숨을 삼키며 계속 진행했다



  「초진이시면 이쪽에서 기입해주세요」



접수처로 가 한 장의 문진표를 집어, 연필과 함께 살짝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인체의 대략적인 그림이 앞면과 뒷면으로 하나씩 그려져 있다


그리고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이 병기(併記)되어 있다


『언제 부터?』 『신체의 어느 부분에?』 『어떤 증상이?』 같은 초진 환자를 위한 질문이다



호노카는 문진표와 연필을 받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접수처에 기대서서 작성하기 시작했다


열띤 시선에서 벗어나, 충격으로 굳어 있던 마키의 마음이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클러치를 잇는 듯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가진 의미가 가슴 속까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






『어째서?』



바로 머리에 떠오른 확실한 말은 단 하나였다



『어째서?』



답 같은 건 뻔하다



『어째서?』



이런 곳까지 와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






  「멀었지?」


  「오후 반차를 내고 1시에 집을 나오긴 했는데, 응, 엄청 머네」



머릿속을 떠도는 의문을 내뱉지 않으려 던진 질문에, 호노카는 침착하게 분명한 말로 대답했다


등을 돌린 채 마키쪽을 보지 않고, 아까 받은 연필을 드문드문 움직이고 있다


추위로 손이 곱은지, 이따금 입김을 불어 손끝을 녹이고 있다



  「이륜 면허 땄어?」


  「응 바이크도 겨울 보너스로 샀어」



호노카가 이쪽을 보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연필을 쥐고 문진표에 글을 새겨 넣고 있다


도쿄에 있을 때 바이크를 타고 싶다고 한 적은 있었다


마키쨩을 뒤에 태우고 투어링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 때, 바이크는 조금 무섭다고 답했었다


눈앞의 여성은 본 적 없는 차림새이지만, 8여년을 공유했던 사람이 틀림없다


8여년을 함께 지냈으면서도, 1년간, 전화는 고사하고 한통의 메일도 주고받지 않았던 연인임이 틀림없다



1년이나


한통도


그런데


어째서



  「다 썼습니다」



호노카가 돌아본다


빨간 입술을 꽉 닫고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문진표를 건네주었다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시선을 떨어트리자, 인체의 앞면이 그려진 그림의, 가슴 부위에 큰 원이 꾸욱 눌러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의 질문에는, 그리운 손글씨가 힘차게 늘여져 있었다



『언제부터?』ㅡ『1년 전부터』


『몸의 어느 부분이?』ㅡ『가슴 주변이』


『어떤 증상이?』ㅡ『쭉 답답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호노카가 쓴 문장에 숨이 막혀왔다


백의 위로 가슴을 눌렀다


도쿄역의 이별을 떠올리니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런 식으로 내버려진 호노카의 기분을 생각하니 함부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감정에 쓸리는 이야기 따윈 더욱


문진표를 든 채, 호노카가 견뎌온 1년의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어째, 서?」



대신, 쥐어짜내듯이 속마음이 쏟아져 나왔다


이유를 알고 싶다는 마음보다 먼저, 호노카를 다시 만난 기쁨이 가슴을 찔러와, 째진 양 눈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방울방울 넘쳐 나왔다



  「어째서!? 그걸 가르쳐주는 게 의사 선생님의 일이잖아?」



얼굴을 붉히며 호노카가 웃는다


도쿄에서 의사 선생님이 될 수 없었던 마키에게 웃어보였다


어찌됐든 이렇게 확실하게 백의를 입은 마키를 보고 웃어보였다


커다란 눈도 커다란 입도 일그러져 있었지만, 목소리도 다 쉰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분명히 웃고 있었다



  「마키쨩의!! 니시키노 선생님의 일이잖아!?」



이윽고 호노카는 얼굴을 완전히 일그러트리며 되풀이했다


손을 뻗어 조심스레 어깻죽지에 올렸다


가죽재킷의 차가움에 애가 타 바로 끌어안았다


호노카의 팔이 등을 감아 힘껏 끌어안아 왔다



호노카의 힘


호노카의 상냥함


호노카의 한결같은 마음


마키가 도쿄에서 잃고, 여기로 와서 아직 되찾지 못한 것


가장 소중했던 것이 이제 서야 겨우, 가느다란 팔에 돌아왔다



  「마키쨩이 있지, 마키쨩이 도쿄를 떠난 날, 바로 마키쨩네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서 들었어 처음엔 거절당했는데 필사적으로 부탁해서 연락처 받았어 그래서 전화했더니, 할아버지 같은 선생님이 그러더라 『1년만 저희에게 맡기세요』 진짜 상냥하고 진짜 심지 굳은 목소리여서, 호노카 있지, 참기로 했어」


  「1년이나 참았다구!? 호노카, 엄청 성격 급한데도 참았다구!? 호노카, 정말 힘들었는데도 참았다구!? 호노카, 너무 외로웠는데도 참았다구!? 마키쨩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면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 쭉, 쭉, 쭉, 쭉 참아왔으니까!!」



변명도, 아무 말도 못하고, 마키는 『미안』 이라 한마디 사과만을 했다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으니까


호노카에게 중요한 건, 자신을 설득시켜줄 말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까


그 대신 정말 강하게 끌어안았다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는 감동을 전하고 싶어 강하게 끌어안았다


스치는 호노카의 뺨은 정말로 차가웠다


아직 새것인 가죽재킷 냄새 너머로 호노카의 달콤한 향기가 났다




화과자집 딸이라 그런지, 호노카의 냄새는 언제나 설탕을 졸인 것처럼 달콤하다




  「마키쨩 열심히 하고 있었네」



어깨너머에 있는 메세지카드를 보고, 호노카가 귓속에 속삭였다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아까 자신에게 물었던 것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했어


분명 열심히 노력했어


호노카를 주저 없이 끌어안았으니까,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호노카가 이렇게 끌어안아주고 있으니까,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분명해



  「응 나, 열심히 했어」



답했다


답하고, 코를 훌쩍였다


노력했어


노력하고 있어


여기서 노력하고 있어


그래도, 도쿄로 돌아가서 노력할 수 있어?


라고 묻는다면, 지금처럼 자신을 갖고 끄덕일 수 없다


도쿄에 간다면 설 곳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이 마을이 좋다


넓지만 작은, 춥지만 따뜻한 이 마을이 좋다


도쿄처럼 꿈과 희망이 넘치진 않지만, 여기가 내가 평온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니까



나를 되찾은 장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있잖아, 호노카



  「오늘은, 오늘은, 정말로,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최고의 생일선물이었어」



오열로 숨이 차 말이 중간중간 끊겼다


호노카를 꽉 끌어안은 채, 차가운 밖에서 따뜻한 진료소로 들어와 빨개진 귀에 속삭였다


고마워


오늘은, 절대로 잊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있지



  「호노카」



전통 있는 화과자집 장녀인 호노카에게, 현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호노카에게, 도쿄에 많은 친구와 동료가 있는 호노카에게, 이런 시골에 와서 함께 있자는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늘 이렇게 만나,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만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선물이 된다



그러니까, 이제 충분하지?



  「호노카 도쿄에서 행복하게」



살짝 호노카에게서 떨어져 바라본다


이것이 『마지막』 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본다


응석부릴 생각이 들지 않도록, 옆 동네의 비즈니스 호텔을 소개해주고, 이 자리에서 이별을 하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과 호노카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행복해야 돼」



호노카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내가 아니다


그래도 행복했음 좋겠다


잡념들을 가로막고 한껏 부드러운 표정을 만든다


도쿄에서 지쳐 있을 때의 억지웃음과는 다르다


자신과 호노카가 있을 곳이 다름을 인정하고, 10년 가까이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는 미소였다



  「마키쨩」



호노카가 바라본다


자신의 각오를 받아들여 바라본다


이번에야말로 끝이다


그래도, 전처럼 슬프지는 않다


절망 따윈 있을 수 없다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그래도 서로 다른 길을 가야하는 거니까



드디어 이별을 고하려는 마키의 눈앞에서, 호노카는 커다란 눈을 가늘게 떴다



장난처럼 웃으며 입을 삐죽이며 이렇게 말했다



  「싫-어」


  「엣?」



째진 눈을 멀뚱멀뚱 깜빡이며 되물었다


호노카는 다시 한 번 『싫-어』 라고 반복했다


막 떨어진 마키의 몸을 쭈욱 당겨, 백의를 한껏 감싸안았다


콩 하고 이마를 들러붙어왔다


눈에 비치는 전부가 호노카의 킥킥거리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10대 때와는 다른, 30세에 다가선 어른의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고교시절과 변하지 않은, 빨려 들어갈 듯한 깊은 눈동자에 마키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호노카는 곤란할 땐 계속 이런 얼굴을 보였다


그것은 학생 시절, 자주 보였던 얼굴이었다


고집부리는, 응석부리는 얼굴이었다


호노카는 늘 이런 얼굴로 억지를 부렸다


그리고 마키는 항상 이것에 꺾일 수밖에 없었다



  「호노카 병이 나을 때까지 봐주지 않으면, 싫-어」


  「호노카」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들러붙은 이마를 떨어트려 이번엔 마키의 어깨에 얼굴을 올렸다


이어지는 말들은 다이렉트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대로 마음 안까지 단숨에 뛰어내려왔다



  「싫으니까 호노카는 마키쨩을 따르게 됐으니까 마키쨩이랑 떨어지다니 절대로 싫으니까 호노카는 정했으니까 이미 정했으니까 호노카가 쭉 마키쨩의 있을 장소가 될 거라고 정했으니까 된다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제, 마키쨩 어딜 가더라도 호노카랑 함께인 거니까 호노카가 따르게 되면 이제, 마키쨩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몇 번이고 그것을 되풀이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마키 역시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싫으니까


정했으니까


함께인 거니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호노카의 떨리는 몸에서 조금 떨어져 마주봤다


눈물로 엉망이 되지 않도록 진지하게 바라보고 대답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이런 곳 까지 달려온 연인에게 대답했다


호노카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 대답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연인의 뺨이 다시는 이렇게 차가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 대답했다



  「이제 호노카를 두고 어디로 가지 않아 호노카를 쓸쓸하게 만들지 않아 호노카를 혼자 두지 않아 나도 호노카랑 함께 노력하고 싶어 호노카의 억지를 들어줄 테니, 내 억지도 들어줘 언제까지나 내 곁이 있어 쭉 곁에 있어줘 나는 여기서 노력하고 싶어 그러니까, 여기 와줘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내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여기로 와줘 쭉 여기에 있어줘」



맹세를 나누는 목소리도, 흐느껴 우는 소리도 끊어졌다


작은 진료소가, 그리고 작은 마을의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두 줄로 소파를 늘어놓은 로비


혼자 서면 꽉 차버리는 접수처 앞


마키의 시야에 가득히 호노카의 미소가 피어났다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호노카의 만면의 미소를 받아, 마키 또한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쭉 함께인 거니까 그치?」


  「응 쭉 약속이야」



어느 쪽에서인지 알 수 없이 서로 앞다투어 얼굴을 대어 키스를 했다


미소 지으며 키스 했다


정말 오랜만의 키스를 신호로, 다시 맞물린 두 개의 톱니바퀴가 천천히,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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