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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불려온 방 앞에 서있었다. 얼굴을 마주대고, 어쩔까 하고 고민하던 중, 노조미가 똑똑 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답하여, 방 안에서 「들어와」라고, 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지 않아 살짝 안심하며, 두 사람은 문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아가씨들」


소녀들은 낮에 살짝이나마 이 방을 들여다봤으나, 밤에 보니 또 다른 이미지로 보였다. 커다란 샹들리에가 불을 비춰, 그 빛에, 벽이나 그 근처에 장식된 물건들이 아름다이 빛났다. 그런 광경에 잠시 눈을 빼앗겨서도, 길고 거대한 테이블의 상석에 앉은 에리의 정면에 권유받아 앉았다. 거기엔 마키도 앉아있었다. 혹시 인간 사이에서 뜻하는 상석과 같은 의미라면 『성주』라고 말할 수 있는 에리는, 이 세명 중 가장 높은 존재--

「그래, 내가 장녀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에리가 그렇게 말해,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떴다. 에리는 그것을, 이상하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자리를 보니까,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봐서. 아니었어?」

「아, 아뇨, 맞아요…. 실례했습니다」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노조미와 코토리에게, 에리는 또, 후후후하며 웃었다.


「괜찮아. 서로서로, 자기소개를 한 적은 없는 걸」

「……둔다고 결정했는데 아직도, 안 해놓은 거야?」

「그렇네, 해뒀어야 했어」


마키가 질린 듯이 지적하니 에리는 어깨를 으쓱하고, 「우미가 둘째고, 마키가 막내, 세자매야」하고 간단히 설명했다.

마침 그 때,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우미와 함께 메이드복을 입은 자가 세 명 정도 들어왔다. 노조미와 코토리가 흠칫하니, 에리는「박쥐야」라고 말했다.


「박쥐…?」

「그래, 잡일을 시킬 땐 사람형태를 하게 했어. 우리의 힘을 조금 나눠줘서 하는 거야」


그렇게 설명을 듣는 사이에, 그 사람 형태 박쥐들은 우미와 함께 척척 식기, 요리를 늘어놓는다. 놓는 게 대강 끝나고, 우미도 자리에 앉았다.


「마음껏 먹어도 돼. 인간의 매너는 우린 잘 몰라서, 그렇게 집착하는 건 없어」

「예, 편안히 드세요. 입맛에 맞는다면 다행입니다만」


에리와 우미가 그리 말하는 사이 마키는 잘먹겠습니다라며 작게 말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이어서 에리와 우미도 식사를 시작해서, 소녀들은 가볍게 얼굴을 마주본 다음, 잘먹겠습니다하고 말하고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들었다.




「--세자매라고는 해도, 사실은 위아래를 따지진 않아. 『언니』라고 불린 기억도 없고」

「당신이 언니다운 위엄을 가졌다면 그리 불렀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어머, 우미는 쌀쌀맞네. 마키, 나를 『언니』라고 불러볼래?」

「기분 나빠」


우미와 마키에게 단박에 거절당한 에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이는 대로, 위아래가 없단 말씀. 즉 무지 사이 좋다는 거야」

「편리하게도 해석하시네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어진 우미가 한 지적이 또 쌀쌀맞다. 에리에게 여동생들은 꽤나 엄격한 것 같았다. 소녀들은 아무래도 말 사이에 끼어들기 어려워, 그저 세 명이 주고받는 걸 들었다. 하지만 에리는 갑작스레 소녀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특히, 노조미쪽을 향해.


「그런데, 네 이름은 아직 못 들었던 것 같은데. 그쪽의, 스타일 좋은 당신」

「헤…」

「……에리!!」


덜컹하고 소리를 높이며 우미는 일어서려고 했지만—그것을 알아챈 에리는 싱글벙글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우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막았다. 에리는 언제나 이런 말을 자주하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우미는 이런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노조미, 예요」

「노조미. 그래, 당신은, 말하는 억양이 코토리와는 조금 다르구나?」

「어」


에리와 그들 앞에서는 그리 많이 쓴 적이 없었지만, 노조미의 말은 다른 지방의 것이었다. 에리의 지적에, 노조미의 시선이 적지 않게 흔들렸다.


「저, 그게, 이건……」

「사정을 들으려던 게 아니야. 원래 말하던 대로 말해도 괜찮을 텐데, 라고 생각해서.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돼」

「아아, 그렇네요. 그렇게 해주세요」


에리의 말에, 우미도 동의했다. 마키는 이쪽의 대화에 아무런 흥미를 갖지 않은 것 같아서,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사정을 듣지 않는다고, 그 말로도 괜찮다고 들은 노조미는 조금 안심하고, 끄덕인다. 에리는 식사를 이어가며 그 모습을 살짝 흘겨볼 뿐이었으나, 우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두 분, 오늘은 무얼 하셨나요? 불편한 덴 없으셨나요」

「네, ……가 아니라, 응…, 잘 대해주니께, 불편한 건 없었다. 오늘은, 성 안엘 쫌 돌아보고 다녔다」

「아아, 당신 말 역시 귀엽네」

「헷, 」

「에리, 말허리를 끊지 좀 마세요……」

「후후, 실례. 계속해줘?」


말을 이어가면서도 에리는 노조미를 지그시 바라본다. 노조미는 그에, 곤란한 듯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에리의 재밌어하는 웃음을 더욱 짙게 만들어버려 소용이 없었다. 입을 다물어버린 노조미을 본 우미가「에리 때문이에요」라며 에리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성, 되게 멋있었지, 노조미쨩」

「아, 어, 응, 그렸지, 이런 커다란 성엔, 들와 본 적이 없었고 말이제」

「그런가요. 동쪽 탑에는 이제 안 들어가 보셨나요?」


우미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노조미와 코토리가 오늘 둘러본 건 이 건물의 안과, 정문의 정면에 있는 안뜰뿐이었다. 그렇게 말하니, 우미는 동쪽 탑을 향해 가리키곤,


「안뜰에서 저쪽방향으로 나가시면 탑이 있습니다, 거긴 귀한 것들이나 서적 따위가 놓여있어요. 흥미가 있으시다면 보러 가보세요」


책, 이라고 들은 노조미가 살짝 눈을 반짝였다. 우미가 그걸 알아채고, 좋아하시나요, 라고 물으니,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다. 이런 역사 깊은 성이라면 분명 옛날 책도 있겠지. 노조미 만큼 책에 관심이 없는 코토리도, 조금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안내하는 건 상관 없는데…」


식사를 끝내고, 느긋이 와인을 기울이며, 마키가 툭. 그녀는 입을 열어도 대부분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마치 혼잣말처럼 말을 내뱉었다. 우미가 마키를 향해, 뒷말을 기대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이 둘은, 이제부터 어쩔 셈이야?」


마키의 말에, 우미가 급하게 말을 막았다. 우미는 말하길 꺼렸던 것이다. 아니면 소녀들의 앞에서는,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거나. 하지만 그런 우미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건 누구보다도, 우미의 언니—에리였다.


「그렇단 말이지」

「에리……」

「그녀들 자신의 얘기니까 말이지, 말하길 꺼려해도 계속 그럴 순 없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그녀들에게는 불안한 일이야」

「……그렇지만」


우미는 식사를 물리면서도,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에리가 말하는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키에게는, 그 어느쪽도,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인간이라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그렇게, 다를 건 없는 것 같아」


턱을 괴고, 노조미와 코토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키와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친 건 여기와서 처음 있는 일로, 두 사람은 조금 망설이면서 눈을 깜빡였다.


「그렇네요, 겉모습은, 저희와 거의 다르지 않아요」

「좀 더, 꼴이 추할 거라고 생각했어」

「마, 마키……」

「왜?」

「아니요……」


이 막내는 꽤나 솔직해서, 포장하지 않은 말투를 쓰는 것 같다. 우미가 작게 사죄하며 눈썹 사이를 좁힌 걸, 노조미와 코토리가 쓰게 웃으며 끄덕였다. 에리는 여전히, 재밌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제물로서 온 거니 만큼, 인간들 중에서 아름다운 편이야」


그 말에 소녀들은 송구해했지만, 우미와 마키는『여자에 환장하는 에리가 하는 말이면 맞겠지』라며 묘한 방식으로 남득했다.


「인간의 피는, 너희들 것보다 맛있어?」


하지만, 여기서부터 대화의 분위기가 바뀐다. 마키가 두 사람을 보는 눈은, 처음으로 귀한 물건을 발견한 시선이 아니라, 먹잇감을 보는 시선이었다. 노조미와 코토리는 한순간에 창백해졌다.


「마, 마키」

「글쎄. 그렇지만 혹시 우리의 피가 더 맛있더라도, 인간의 피가 없으면 우리도 살아가지 못하고, 우리도 인간의 피가 있으니까 마키는 우리에게 흡혈하는 걸로도 살 수 있는 거야. 어느쪽이라도 맛있을 테지만, 인간의 피는 살기 위해, 필요 법이야」

「에리, 마키. 부탁입니다, 두 분 앞이니까 말을 좀……」


입을 다물고, 표정을 굳힌 두 사람을 보고, 우미는 필사적으로 대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에리는 굳이 말로 하려고 했다. 우미의 말을 들을 여지는 없었다.


「제대로 말해보자」


에리가 손을 드니, 박쥐들이 그릇들을 치웠다. 에리와 그들이 식사중에 입에 댄 와인같은 마실 것들만이 그곳에 남았다. 새로이 따른 그것에, 에리가 입에 댄 후, 다시 테이블에 잔을 돌린다 아까까지 당연히 볼 수 있던 그 색은, 지금 소녀들에게 공포를 깊게 했다.


「지금 너희들의 마을을 습격하는 건 좋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다음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라고는 해도,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피가 필요해. 그러면 인간의 흡혈을 막자—라는 건, 못해」


노조미와 코토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반론하는 것도 못했다.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러니까, 고민스럽단 말이지……결론을 내는 건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고민하게 해줘」


휴우,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에리는 또 와인을 입에 가져다댔다. 노조미와 코토리에게, 우미가 또다시「죄송합니다」하고 말한 데에, 이번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용기가, 두 사람에게는 없었다.



「제물이니까, 그녀들을 받아주는 게 도리야」

「그건 제가 용납 못해요」


소녀들이 방을 나간 심야에, 에리와 우미는 그녀들의 처우에 대해 의논했다. 계속, 의견이 대립했다. 우미가, 그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걸 단호히 반대하고 나섰다.


「그 아이들을 되돌려 보내고 싶은 마음은 알아. 적힌 대로라면, 그녀들은『순결한 여인』. ……즉,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

「그러므로!」

「불쌍하기도 하지. 그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되돌려줄 순 없어. 알지?」

「……으」


제물을,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내준다고 해도.

돌아간 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겠는가. 소녀들 본인이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혹시 에리와 그들이 설명하더라도, 소녀들은『제물로서 제 할 일을 못다한 자』가 된다. 최악의 경우, 도망쳐왔다는 혐의를 받겠지. 그 마을에서 나온 후부터, 소녀들에게『같은』 돌아갈 장소는 준비해두지 않았다.


「있잖아, 우미. 제물을 보낸다고 해서, 정말로 해결 될 거라고 인간들이 믿을 것 같아?」

「……예?」


우미는 에리의 말에, 잠시 동안 입을 다물었다. 물끄러미 그녀의 옆을 바라본다—그러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이,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보내올 리가」

「있지. ……아마도, 그 아이들은 정치에 도구로 쓰였을 뿐. 인간들은“제물은 살해당하고, 피해는 줄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


그리곤 계속해서 에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마을에서는 피해에 대해 손쓰지 않는 통치자에게 불만이 쌓여가,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급히 『무엇』이라도 해야할 상황이었겠지. 마을의 종교 따위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먼저 번으로 나온 게『제물』이라는 발상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피해가 줄지 않는다면야, 인간들은 다음 수를 생각해야만 한다.


「다음 수……」

「분명, “더 이상의 피해를 막으려면 공격할 수밖에 없다”고, 주민들을 꼬드길 거라는 게 무서운 거야」

「그렇지만, 옛날에도 공격해 와서 돌려보냈지만, 언제나……」

「그래. 이쪽은 피해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마을들이 무너졌던 일밖에 없었지. 그래서 그게 간단하지 않다는 건, 인간들도 알아」


우미가 재차 잠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행동의 이유는, 이해를 못해 생각에 잠긴 것은 아니었다. 에리의 말을, 우미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런 것이었냐며, 심히 슬프게도, 눈썹을 찡그렸다.


「즉, 전멸을 각오하고 달려들어 오거나, 피해를 받아들이고 포기할 수밖에 없어, 나쁜 건『뱀파이어』뿐, 통치자가 아니라고」

「그래, 그렇게 마을 내 불만을 사그라들지. 그녀들은 그를 위해, 첫 번째 수단」

「……버리는 패, 인가요」

「그렇겠지. 마을 전체가 광신도라도 돼서, 제물로 뱀파이어가 진정하리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은」


제물로 뽑힌 것만으로도, 가여울 터인데. 그녀들은 제 입장을 아는 것인가. 우미는 그녀들을 떠올려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꽉 주먹 쥐었다. 하지만 에리는 그런 우미에게, 그녀들이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문제는, 그 애들이 불쌍한지 어떤지가 아니야」


납득가지 않는 표정을 한 우미쪽으로는, 에리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심란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일부러인 듯 어깨를 으쓱인다. 에리가 무언가를 얼버무릴 때나 농담거리를 말할 때마다 하는 행동으로, 우미는 그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마을이 『공격한다』는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싸워야만 해. 귀여운 마키를 지키면서도 나와 우미라면 질 리가 없겠지만, 여기에서 날뛰게 놔두는 것도 싫고, 움직이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그 큰 사냥터를 잃게 돼」

「여러모로 반박하고 싶은 데가 있지만, ……확실히, 그건 문제가 되겠군요」


진지한 이야기를 옆으로 새게 한 것에 우미는 불쾌해하면서도, 주제에서 벗어나진 않았고,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던 탓에, 크게 몰아붙이지 않고 수긍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에리는 진지한 이야기로 갈 생각은 버린 듯한, 꾸밈이 들어간 어조를 쓰기 시작했다.


「아마 그렇지, 악인한테서만 흡혈하는 편식이 심한 여동생이랑 엮여버리면, 사냥터가 큰 곳이어야만 하니 어려운 법이지. 새로운 곳을 찾기 전에 배가 고파질 거야」

「……젊고 특출나게 아름다운 여성한테만 흡혈하는 것도 정도껏이죠」

「어머, 아름답기만 하면 어린 아이부터 고령까지 커버 가능하다고?」

「벨 거예요」


번뜩 노려본 우미에게, 에리는 키득키득 웃을 뿐. 우미의 화를 돋울 뿐 이었다. 또 에리는 아무래도 알면서도 이러는 것 같다. 화를 깊게 한 우미는, 소파에서 기세좋게 일어섰다.


「애초에 전 당신의 그런 점을 용납할 수가 없어요! 아무 죄 없는 자로부터 앗아가려하다니…!」

「배고프고, 맛있어 보이고, 귀엽고, 맛있고,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이, 이…으!」


화를 참지 않고 칼집에서 검을 빼내, 에리를 향해 내리쳤다. 에리는 근처의 촉대로 그것을 막아내고, 시원스러운 얼굴로 웃으며「이 촉대 비쌌는데, 흠집 날지도 모르겠네」 따위의 말을 입에 올렸다.


「사람 말을 진지하게 들어먹질 않는 곳도…! 싫어요…!」

「나는 우미의 그런, 농담이 안 통하는 점도 지긋지긋해」

「뭣!」


확 머리에 피가 오른 우미가, 검을 쥔 손에 꾹 힘을 더하고--, 그 등에,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둘 다 좋아해. 그러니까 이제 별거 아닌 일로 싸우는 건 그만해」


우미가 뒤돌아봄과 동시에, 에리는 그 검을 받아넘겨 빠져나와, 비싸다던 촉대를 대충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기쁜 듯이 양팔을 벌려 마키를 향해 걸어가, 「나도 마키를 엄청 좋아해」 따위의 가벼운 말을 내었다. 우미는 그 등에 또 다시 검을 내려치고 싶어졌는지 고쳐 쥐었지만—방금 마키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참이라, 심호흡을 하고는, 얌전히 칼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에리-, 성가셔. 일일이 가까이 안 와도 돼」

「에~ 그렇게 말하지 마, 마키, 있잖아 다시 한 번만 말해줘?」

「……짜증나」


희희낙락 마키에게 껄떡대던 에리는 깔끔이 떨어져나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우미는 그런 에리를 제치고, 마키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 마, 마키, 지금, 저를」

「우미도 끈질겨」

「으……」


에리, 우미에게 있어서, 막내인 마키는 귀여워 어쩔 수 없는 여동생이었다. 마키는 두 사람이 팔불출인 것도 잘 알고, 제멋대로구는 데도, 그걸 알면서도 귀여워할 정도로, 언니 둘은 그녀를 어리광받아주었다.


「이제부터 피아노 칠 거야. 시끄럽게 하지 마」


아무래도, 이쪽이 마키의 진심인 모양이다. 둘은 역시, 그럴 거라고 눈치 채고도, 귀여운 여동생이 해준「좋아해」라는 한마디에, 싸움을 그만두었다.






그 날, 밤이 지나고, 에리와 우미는 자지 않았다. 마키의 피아노를 당분간 듣고, 그녀가 잠들고도, 서먹하게 그 방에 머물렀다.


「태양이 뜨고서 꽤나 지났는데도, 오늘은 방에서 안 나올 것 같네」

「……네」


저녁 자리에서 그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을 마음에 걸려해 거실에서 기다리던 건, 우미였다. 에리가 기다리는 데엔 특히 이유라곤 없었지만, 우미가 신경 쓰여서인지, 또는 그녀도, 소녀들의 상태가 마음에 걸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역시, 불쌍해요. 에리, 제발 그녀들에게는, 손을 대지 마세요」

「……혹시 거기에 꿰뚫린다고 해도, 그녀들이 “불쌍하지 않게”되는 게 아니라구」

「그러니까, 저는 그런 점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고!」


에리가 스윽 소파에서 일어서, 우미의 말을 잘랐다. 흡 하고 숨을 들이쉰 에리는, 조금, 언니의 모습을 보였다. 그저 졸음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미도, 그녀에게 맞춰주듯 소파에서 있어났다.


「그러면 문제없이 그애들을 돌려보낼 방법이라도 있어?」

「그건……」

「우리에게 인간은“먹잇감”이야. 그들에게 우리는“사냥꾼”이야. 어떻게 해보더라도, 적이 될 수밖에」

「알긴, 압니다……」


그대로 거실을 나가려나 했던 에리는, 우미의 곁으로 다가가 끌어안았다. 예상 밖이었던 우미는 팔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눈을 껌뻑였다.


「뭡, 니까」

「너 같은 뱀파이어는, 전설에서밖에 못 들어봤어. ……상냥한 아이네」


그 목소리에, 우미를 끌어안은 것과 같을 정도로, 상냥함이 담겼다. 적당한 태도에, 무자비하고, 우미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언니는, 어찌 되더라도, 그러더라도 우미의 언니였다.


「우미를 봐서, 두 사람한테는 아무 짓도 안 할게. 네가, 좋을대로 해」


그리 말하고는 에리는 우미의 머리를 쓰다듬고, 거실에서 나간다. 경박한 사람이지만,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우미는 그 발이 향하는 곳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그 발소리는 바로 에리의 방으로 이동했다.


남겨진 우미는, 다시 소파에 고쳐 앉았다. 그녀들의 방이 열리는 소리는, 또 다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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