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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en across의 작가 みるく★님의 단편입니다.



***

 이 학교에 입학하고, 봄의 벚꽃 잎을 맞으며 아직 싸늘한 바람이 불던 아침.

분홍색의 가로수길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푸르게 그 색을 바꾸어 간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온화한 기온의 나날도 금방 끝나고, 분명 곧 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이 시작되겠지.


 중지와 약지 사이에 볼펜을 끼고, 빠르게 펜을 돌린다.

칠판에 쭉 늘어서 있는 수학 방정식. 어느 것도 제대로 교과서만 읽었다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풀 수 있는 문제뿐이다.

그런데도 동급생들은 모두, 머리를 감싸 쥐고「모르겠어ー」같은 멍청이 같은 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노트에 답을 적어내렸다. 간단한 작업.

주어진 시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에 나는 문제를 풀었다. …그래서, 무심코. 칠판에서 눈이 떨어져 버렸다.


 …창밖에서 들리는, 활기찬 3학년의 목소리. 언뜻 보이는 체육 수업의 풍경.

요즘 시대에 리본으로 트윈 테일을 하는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겠지.

 …딱히 눈으로 쫓고 있던 건 아니다. 저런 눈에 띄는 머리 모양이니까,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 뿐.



「……」



 야자와 니코, 고등학교 3학년, 신장 154cm, 흑발 트윈 테일, 날씬함.


내 뇌 속의 디스크에 엄청난 스피드로 입력되는 정보.

 마치 그건 블라인드 터치*처럼, 기판을 보지 않아도 순식간에 입력되었다.

기억력이 좋다는 거겠지. 나는 머리가 좋으니까.

(*블라인드 터치 : 보지 않고 타자를 치는 것)


 몸을 만들기 위해 트레이닝을 할 때도, 발성 연습 때도, 작곡할 때도, 어느새 그 사람은 내 곁에 있었다.

나 혼자만의 공간인 피아노 의자도, 둘이서 앉으면 좁아지는 데도 당당하게 앉아 있는다.

「조금만 옆으로 가봐」같은 말을 하면서, 내 허리를 옆으로 밀치는 거야.

「왜 옆에 앉는 건데」라며 곁눈질로 보는 내게, 만반의 미소를 지으며「마키쨩이 쓸쓸해하니까니코」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아. 그 사람의 별명은, 웃기기 성인으로 결정이네.


턱을 괴고, 펜을 노트에 부딪치며, 나는 다음 곡의 리듬을 생각한다. …다음 곡은 16비트로 하는 건 어떨까.

…그래도, 그런 빠르기로 작곡을 하면, 웃기기 성인이 춤을 추다가 다리를 삐어버릴 지도 모르겠네.

무대 위에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아니, 다른 멤버들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되어버린다면…


역시 8비트 정도가 좋으려나. …뭐, 이런 걸로 타협하자고 하면 분명 화를 내겠지, 그 웃기기 성인은.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이동교실 시간에 지나가던 3학년 복도에서, 이런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아직, 벚꽃이 휘날리던 날의 일이었다.



「…왠지 저번에 말야, 아이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야자와 씨가 끼어들었어」

「아ー 다른 얘들도 그런 적 있다던데. 언제나 혼자 있는 사람이지?」

「솔직히 좀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 갑자기 진심이 되는걸. 깔보는 느낌으로…」




 하지만, 그건 내 한 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저 머릿속에 남았던 건「아이돌」과 「야자와 씨」라는 단어 뿐.


 그때는 설마 내가 「야자와 씨」와 같은 그룹에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고, 존재조차 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복도를 지나갈 때 들었을 뿐인, 정말 짧은 시간 동안의 이야기.

타인에게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 같은 건, 중학교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 지루한 일상 속에서, 무언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건 내게 있어선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딱히 이 학교에 바라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내 365일과 3번의 사계절은, 간단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들려오는 대화라고 해봐야, 「흐음ー…」이라는 한 마디로 넘겨버릴 만한 내용 뿐.


 ――그것이, 【니시키노 마키의 고교 생활】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진로상담 시기였다. …별로 대화를 하지 않는 아빠에게, 나는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아빠의 방은 내 방의 옆. 웬일로 아빠는 빨리 돌아와 계셨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고동쳤다.

 과연 받아들여 주시는 걸까. 무시해버리시진 않을까…

그래도, 말로 한다면 분명 알아주실 지도 몰라. …움직이지 않는 건 겁쟁이잖아.

 여기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내 길은 그저 지루할 뿐인 일방통행로가 되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빠, 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피아노는 취미로 끝내면 되잖아”

 “…그래도, 난…”

 “너는 의사가 되는 거다. …아빠의 뒤를 따라, 이 병원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음악이 하고 싶어…! 부탁이야, 꿈이니까…”

 “고집부리지 마라. 음악가의 딸도 아니고, 넌 의사의 딸이다

  자기 입장을 알고, 네 장래를 위해 공부를 최선으로 해라. 다 너를 위한 일이다.”


 “……어째서 항상 내 생각을 부정하는 거야… 아빠 같은 건, 정말 싫어”

 “뭐든지 말해 봐라. 내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집에서 나가면 된다”



…이미 지난 이야기다. …내 인생은, 이미 그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꿈은, 결국 꿈에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위해 힘쓰려고 해도, 그 무언가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나는 의사가 되기 위해 막대한 지식을 남들보다 잔뜩 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머릿속에【꿈】같은 건, 구석조차도 있을 곳은 없다.




        그

        렇

        게


        생

        각

        하

        고

       

      있

      었

      을

      

      텐

      데

       .







「니코니코니ー! 모두에게 미소를 전해주는 야자와 니코니코ー!」


 …아아, 오늘도 저런다. 빠지질 않네.

나는 부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귀에 날아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흘려 냈다.


 손거울을 책상에 올리고, 몇 번이고 그녀는 의미 불명의 주문과 귀여운 척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2학년 트리오는 오늘도 빠지지 않고 학생회장을 동료로 넣기 위해 설득하러 간 것 같다.

 슬슬 포기하면 좋을 텐데. …그 학생회장이 우리들과 같이 춤추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되질 않아.

 린과 하나요는 다가오는 시험을 위해 공부 중.

낙제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린을 위해, 하나요가 딱 붙어서 도와주고 있다.

…내가 공부를 도와줘도 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이해가 잘 되도 남을 가르치는 건 못하거든.


 그런 이유로, 쓸데없는 사람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나와 니코쨩이, 지금 이 부실에 있게 된 거지만.


딱히 니코쨩과 할 이야기도 없으니까, 나는 다리를 꼬고 우화를 읽고 있었다.


「……」

「니코니코니ー!!」


 무언의 나와, 쓸데없이 하이 텐션인 그녀. 뭐야 이 조합, 이라는 느낌이네.

독서에 집중하고 싶은데, 때때로 들려오는 그녀의 캐치프레이즈 때문에, 어쩐지 엉망이 되어버렸다.

 …점점 속에서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니코니코니이이이ー」  곁눈질로 시끄러운 그녀를 쳐다봤다.

 …마치 이제는 하트라도 발산할 듯한 기세. 눈을 껌뻑거리면서 얼마나 거울을 쳐다보는 거야. …바보 같아.


「…잠깐. 좀 시끄럽지 않아?」

「니코니… 에? 뭐라고 했어??」

「…시끄럽다고 했어, 이쪽은 조용히 독서하고 있잖아」

「하아? 여긴 아이돌 연구부야, 도서관이 아니라고. 그것보다 너도 연습하란 말야」


「…아무도 없는데, 뭘 연습하라는 거야」

「어쩔 수 없네에, 마키쨩에게도 알려줄게, 니코니- 캐치프레이즈를」

「누가 하고 싶대. 나는 그런 이상한 프레이즈 보다는 책이 더 흥미로운데」


검지로 펼쳐진 책을 툭툭 쳤다. 그런 나를 보며, 니코쨩은 불만인 듯 볼을 부풀렸다.


「그렇게 책이 읽고 싶으면 집에 가면 되잖아. 차라리 음악실에 가던가?」

「……오늘은 취주악부가 음악실을 쓰고 있어」


 “집에 가다”라는 물음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딱히 내가 이 부실을 좋아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뿐. 마지막 희망인 음악실도 못 쓰고.


 오늘은 아빠가 빨리 돌아오는 날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러니,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자, 라고 하셨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것 뿐.


 …언제부턴가 나는, 아빠를 피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의 부장은 나니까, 니코가 뭘 하든 상관없잖아」


 허리에 손을 올리고, 척하고 손가락을 내미는 니코쨩을 보고 나는 책을 덮었다.

「…그것도 그러네」라며 짧게 대답하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 가방을 들어올렸다.


「에, 뭐야, 진짜 돌아가?」

「부장에게〝돌아가던가?”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뭘 삐지는 거야. 기다려, 니코도 갈 테니까」

「안 삐졌어. 그리고 같이 돌아갈 이유도 없잖아」


「너도 정말 귀염성 없네! 혼자서 돌아가는 것보다 둘이서 돌아가는 게 쓸쓸하지 않잖아」

「……그러려나? …그런 거, 잘 모르겠는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나는 먼저 부실의 문을 열었다.

…복도의 창문 너머 교정에서 들려오는 운동부의 목소리… 멀리 떨어져 있는 음악실에서는 “음악”이 들려온다.

내 귀가 찾고 있는 건 멜로디들… 물론 취주악부에는 피아노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하고 만다.


 음악실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밖의 부활동을 보고 있으니, 마치 BGM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두, 소리치며 일분일초를 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어. 즐기고 있어.


 돌아가기 위해 부실의 문을 열었을 텐데, 눈에 비치는 광경에 문득 애상감이 들어… 선 채로 멈춰 있었다.


「뭘 멍하니 서있는 거야. 아, 혹시 기다려준 거야?」


 돌아갈 정리를 마친 니코쨩이 뒤에서 몸을 내밀며 느닷없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흘끔, 하고 니코쨩을 보며「…그럴 리가 없잖아」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니코쨩도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결국, 같이 돌아가게 되었네. 학교를 나와 익숙해진 통학로를 같이 걸어간다.

 

 니코쨩은 걷는 게 느렸다.

두고 가도 상관은 없는데 말야, 왠지 발걸음을 맞춰주려니 이쪽도 따라서 늦어져버리니까.

 확실히 한 걸음씩 집으로 걸어가는 다리. 발꿈치를 끌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ー 싫다. 이 공원, 완전히 공터가 돼버렸잖아」


 갑자기 니코쨩이 말을 시작했다. 나는 에? 라고 대답하며 옆을 보았다.

니코쨩은 나와 정반대의 방향을 향한 채, 커다란 공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을「이 공원」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 걸맞지 않는 호칭이었다.


「마키쨩, 몰라? 여기 최근, 놀이기구가 전부 철거됐거든」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반응 적엇, 사는 곳인데도 관심이 없네 넌. 전에는 그네라든지 시소도 있었잖아」

「딱히 여기에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심도 뭣도 없으니까 어찌 되든 상관없잖아, 그런 건」

「오토노키자카 구의 어린 애들은 여기서 놀았잖아, 너 친구 없었어?」

「………」


 조용해진 나를 보고 뭔가 깨달은 듯이「어머, 실례…」라고 말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뭐, 별로 상관은 없으니까. 실제로 그랬기도 하고. …애초에 친구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사실은, 예전에 이 공원에서 아빠랑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시소를 타고 놀았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오래된 일이라, 추억이라도 부를 수도 없다. 이제는 사라진 놀이기구처럼, 내 마음 속에서도 사라져버렸다.


「…좋아, 잠깐 놀다 가자, 마키쨩」


 내려간 내 손을, 니코쨩은 꾹 잡아당겼다.

「붸에에…?」멈춰있던 다리가 갑자기 움직인다. 비틀거리는 나는 무심코 가방을 떨어트릴 뻔 했다.

 그런 나를 본체만체, 그녀는 공터로 변한 공원에 발을 들여놓았다.


 주택의 사이로, 석양이 보였다. …오렌지색의, 둥그런 빛.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뭘 하고 놀자는 건데」

「모래하고 나뭇가지만 있으면 사람은 어디서든지 시간을 때울 수 있다고」

「…하아?」


니코쨩은 공원 구석에서 가는 나뭇가지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주워왔다.

 그리고 몇 번째인가의 가지를 줍더니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자, 여기. 마키쨩의 펜이야」…펜이라니, 그냥 나뭇가지잖아.


 나는「필요 없어」라고 말했는데도, 교복 너머로 나뭇가지로 가볍게 배를 찔러왔다.

블레이저가 방패가 돼서, 아프지는 않지만…

「안 받으면 찌를 거야」라고 말하는 니코쨩에게「찌르고 나서 말하지 마」라고 받아쳤다.


니코쨩은 자기의 “펜”도 찾은 후, 내손을 잡고 공터의 한 가운데로 데려갔다.

 거기에 나를 쪼그려 앉게 하고, 자기도 옆에 앉았다.


「도라에몽을 그리자. 어느 쪽이 더 잘 그리는지」


 아무래도 모래에 그림을 그리며 놀려는 것 같다. …초등학생이냐. 이 사람, 일단은 고등학교 3학년인데.

공터에 홀로 서있는 커다란 시계를 쳐다보니 아직 저녁이었다. …별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뭐, 이쪽이 낫겠네.


 나는 기억에 기대어 도라에몽을 그렸다.

어릴 때에 별로 만화를 보지 않았던 탓에,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국 그려진 건, 잘 그렸다고는 할 수 없는 둥근 쥐 같은 고양이. …뭐야 이게.


옆을 살짝 보니, 의외로 잘 그려진 니코쨩의 그림이 있었다.


「항상 동생들에게 캐릭터를 그려 주니까, 잘 그리게 됐어」

「…그걸 자랑하고 싶었던 거야?」

「후후.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고」


 어찌 되든 상관없는 정보다.


다음으로 니코쨩이 그리자고 한 건「가족 그림」이었다.

 …내 손이 멈춘 건, 당연한 일. …그런 유치원에서나 그릴 만한 주제를 낸다고 해도, 난 그리지 않는다. …그리지 못한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언제나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아빠의 얼굴뿐이니까.


그런 내 마음도 모르는 니코쨩은, 모래에 술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상냥해 보이는 아빠와, 엄마의 그림. 그리고, 니코쨩과… 두 여자 아이의 그림.

여동생인 걸까. …그런데 보고 있으니, 어느 그림을 봐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뭇가지를 내려놓았다.


「너, 아직 그림 안 그렸잖아. 제대로 그리라고, 잘 못 그려도 되니까」


 말이 많네. 시끄럽다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가 아닌 것뿐이야」라고 한 마디 했다.

그런데도, 니코쨩은 그런 나에게 코웃음을 쳤다.「아, 알았다. 너희 집, 혹시 사이 나쁜 거야?」라고.


…정말 섬세함이라곤 한 조각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 상관없지만.


나는 딱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그러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니코쨩은 방금 완성한 가족 그림에, 꽃을 그리고 있었다.

 …이 사람과는, 모든 게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흐음. 그래서 그렇게 쌀쌀맞은 거구나, 마키쨩은」


 …갑자기 찌르고 들어오는 말에, 내 미간에도 주름이 잡혔다.

쌀쌀맞아…? 그것 참 미안하네, 쌀쌀맞아서. 그래도, 흥미 없는 거에 흥미 있는 척은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나는.


「…니코쨩은 어차피 가족과 함께 훈훈하고 원만한 일상을 보내고 있으시겠죠-」


 목소리는 냉정한데도, 조금 시비를 거는 듯한 말투를 해 버렸다. 그래도, 그게 진심이니까.


 니코쨩 같은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해줄 리가 없어.

나에게는 너처럼, 그런 반짝이는 미소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꿈」같은 건 없으니까.


 …「꿈」을 꿀 수 없어. 아니,「꿈」을 버렸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이런 나도 어릴 적에는 잘 이야기하고 웃는 아이였는걸.

  사용인인 와키 씨에게도「아가씨는 말을 잘 하시네요」라고 들은 적도 있다.

길을 건너갈 때는, 손을 들고 오른쪽 왼쪽을 말하며 가고. 잘 뛰어다니고, 자주 넘어지고.

 하지만 친구는 거의 없어서, 주위의 아이들이 하는 놀이 같은 건 잘 모르고 있었다.


 「저걸 갖고 싶어」라고 말을 하면, 곧바로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부탁을 하지 않아도, 문득 보면 방 안은 여러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두꺼운 참고서들이나 세계지도 뿐.

…초등학생 때부터, 마치 시험 직전인 학생 같은 방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내가「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게 되어 있었다.

 이유…? 그런 건, 한 가지 뿐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들은, 무의미한 것뿐이라고 깨달았으니까.


내가 입 밖으로 내는 생각은, 결국 어느 것도「헛소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저걸 원해, 이걸 원해, 라고. 간단하게 입 밖에 낼 수 있는 것들은, 사실은 나에게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것뿐이다.


정말로 원하고 원해 어쩔 수가 없는 것도, 제대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말을 꺼냈을 때. 자그마한 용기를 쥐어 짜, 입 밖에 내어 부딪혀보았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며 크게 울리고, 작은 기대와, 커다란 불안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 못한다.”라고 거절당했을 때의 아픔은,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커다랬다.


 참고서처럼 두꺼운 나의 인생. 열려 있던 꿈의 페이지는, 털썩 하고 닫혀버렸다.


 그 아픔을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어. 어차피 누구든지 타인에 지나지 않으니까.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아무리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도, 결국 그건 더욱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아이돌 부도, 나에겐 집에 조금이라도 더 늦게 가기 위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확실히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분명 나는 모두와는 다른 곳에서 일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만이라. 역시 그렇게 보여?」


나뭇가지로 슥슥 굳은 모래를 갈아,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니코쨩.

「에?」라며 답하니, 뭐가 웃기기라도 한지, 그녀는 헤헤-, 하고 웃었다. 거기서 웃는 의미 있는 거야? …의미를 모르겠어.


「니코의 집은 말야, 아빠가 없어. 어릴 때, 가버렸거든」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살짝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족의 그림을 다 그린 니코쨩이 다음으로 그린 건, 밋밋한 사람 모양의 그림이었다.

똑같이 생긴 그림을, 몇 개씩이나 그려간다. 겹쳐서, 몇 번이고.

그런 아이 같은 짓을 하며, 그녀는 살짝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조금은 의외였다. 이런 타입의 사람은, 평범하게 화기애애한 가정 안에서 살 것 같았는데.

이혼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사라져서 그래도 행방불명이라던가…?

 …설마, 자기와 싸워서 집을 나간 건가. 아니, 그런 거라면 말을 안 했으려나.

그렇게 헤어졌다면, 이런 느낌의 가족 그림 같은 건 그리지 않았을테니까.


 나는 어쩐지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뭇가지로 모래를 긁기 시작했다.


「…병이었어.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말기라는 거 있잖아? 이제 가망이 없다고 했었어」

「……」


 무심코 말을 삼켰다. 지금 니코쨩은 얼마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을까 보았더니, 의외로 엄청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가버렸다는 게 분명 어딘가 먼 곳으로 가버렸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말기라는 말은, 의학 서적에서 자주 본 적이 있다. 예후 불명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도, 예후라는 말은 살짝 가벼운 말이다. …하지만 말기라는 말은 그 이름대로, 다음이 없다. …살 방법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전엔 아빠가 있는 집이 부러운 적도 있었어.

 그런데 아빠가 있는 얘들은, 아빠를 싫어하기도 하더라.

 아빠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어, 같은 말만 하는 거야.

 예전엔 그게 용서할 수가 없어서, 친구들과 자주 싸우기도 했었지」


나는, 니코쨩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내 얼굴이 떠올랐다.

…내 얼굴 옆에는, 언제나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

 나는 니코쨩이 말하는 대로, 아빠가 있는 가정. 그리고 …아빠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그녀가 말하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인 거겠지. …어릴 때 만났다면, 다퉜을지도 모르겠네.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피아노는 취미로 끝내면 되잖아”

 아빠에게 들었던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참고서 위에 샤프 끝을 꾹 눌렀다.

탁…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부서진 심은, 내 마음 같이 보였다.

 …이 감정을, 만약 남에게 표현할 단어가 존재한다고 해도, 나는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동정 따위 헛될 뿐이다. 부모를 소중히 해라, 부모님이 말을 하면 들어라, 라던가.

 그런 도덕 수업 같은 설교 따윈 듣고 싶지 않아.

결국 이 세상에 떨어진 모든 사람은, 생판 남에 불과하니까.


집 현관처럼, 터벅터벅 아무나 들어올 수 있을 것처럼… 마음은, 간단하지 않아.


「…상냥한 아빠라면, 아무도 싫어하게 될 리가 없는 게 당연하잖아?

 지금은 만날 수 없다고 해도, 상냥한 아빠가 있었잖아, 니코쨩네 집은」


나는 무심코 따지는 듯이 말을 하고 말았다.

 넘겨들었으면 됐을 텐데… 그보다, 여기는 보통 니코쨩을 동정해줘야 하는 분위기인데.

아빠가 없는 아이에게, 어째서 이런 말을 해버린 거지.

 …아니, 아빠가 없으니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부모를 싫어하게 되는 기분 같은 건.


 나와 니코쨩은, 완전히 반대니까.


나는 니코쨩이 모래 위에 그린 그림을, 다른 나무로 슥슥 지워 버렸다.

 늘어서 있는 사람 모양의 그림을 하나씩 하나씩, 내 손으로 지워 나간다. …사람은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혼자니까.


 …정말, 귀염성 없는 나다.


화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니코쨩은 담담한 목소리였다. …나의 말에, 응, 하고 대답했다.


「응, 이제는 그렇게 생각해. 자기 부모를 싫어하고 싶어서 싫어하는 아이는 없을 테니까」


눈이 마주쳤다. 그 표정을 보고, 마음이 꽉 조여 왔다. …괴로웠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분위기와 대사에 맞지 않을 정도로 상냥한 표정… 의미를 모르겠어…

나는 침을 삼켰다. …그림을 지우는 걸 멈췄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줘.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싫었단 말야. …싫어하게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 따윈 …없어.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하는 건 그만둬..


「…니코는 말이지, 아빠를 많이 따랐었어. 요리를 잘 하고, 상냥하기도 했거든.

 니코의 이름, 아빠가 지어준 건데, 웃으며 살라는 의미야」

「……」

「…어릴 때, 니코니코니라는 마법의 주문도 알려주셨어.

 봐, 입을 옆으로 벌리면 니- 이렇게 되잖아? 니코의 이름과 그 주문은 일심동체란 거지.」


 니코쨩은 자기의 양 손을 얼굴 옆에 붙이고, 엄지와 검지, 약지를 세웠다.

니코니코니의 포즈다. 그 손을 내게 내밀었다.


「…아빠 손가락, 엄마 손가락, 아기 손가락을 세워. 아직 동생들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 이 포즈를 배웠거든」


  세워진 세 개의 손가락. 나는 내 손으로도 같은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아아, 정말이다… 이렇게 보면, 가족 같은 모습이네…


「…그런데, 예전에 어릴 땐… 니코, 엄청 고집쟁이였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여자아이였지」

「괜찮아, 지금도 그대로니까」

「시꺼, 분위기 좀 읽으라고.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란 말야」

「……미안」


 퍽, 팔꿈치를 옆구리에 박히고, 나는 작아졌다.

그런 나를 보며, 풉…하고 니코쨩은「정말, KY*라니까」라며 웃었다.

(KY* : 분위기를 못 읽는 사람)


 점차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놀이기구도 없는, 넓은 모래밭.

 …마치 동심을 잃어버린 쓸쓸한 마음처럼 보였다.

…내 마음 속 공간을 표현한다고 하면, 딱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니코는 있지, 동생이 있어, 쌍둥이가. …정말 사이좋은 자매야, 항상 니코를 잘 따라줘.

 니코도 제대로 좋은 언니인걸?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낼 자신이 있어.」

 

 …그 말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간단히 예상이 되었다. 어머니만 있어 힘든 형편에도, 정겨운 가족이 상상되었다.


 …역시 원만한 가정이잖아. 의미심장한 말이나 하고. 뭐냐구.


「…그래도 말야, 니코,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언니 같은 건 되기 싫다고 생각했었어」

「…에??」

「아이돌도 말이지, …어릴 때는. 사람들을 미소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모두에게 귀여움 받고 싶어서 하고 싶었던 거야.

 무대 위에서 귀여운 의상을 입고, 모두가 니코를 사랑해주고,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건 행복하겠지, 라면서.

 괴로운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어떤 응석도 전부 받아주는 게 아이돌이라고 생각했었어」

「……」


「니코의 생일이었어. 엄마에게,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했을 때, 정말 싫었어.


 그야, 동생들이 생기면, 아빠도 엄마도 니코보다 동생들을 더 사랑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런 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계속, 떼만 쓰고 있었지…」


 그리고 순간, 니코쨩은 멀리 떨어진 석양을 바라보았다.

이야기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던 옆모습이, 이때만은 어른처럼 보였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나뭇가지로 모래를 긁는 것을 그만두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계절이 변화하는 시점. 해가 가라앉자 곧 날씨가 쌀쌀해지는 게 느껴진다.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는 석양.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니코쨩의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등불은, 아름다웠다.

니코쨩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전, 아주 어릴 적.


  …――자신이, 마음 속 깊이 간절히『아이돌』을 목표로 하게 되었던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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