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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en across의 작가 みるく★님의 단편입니다


[이전 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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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저것 생각하다가는, 분명 타이밍을 놓쳐 말하지 못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냥 말해버리기로 했어.「……나, 의사가 될 거야」라고…


 갑작스럽게 꺼낸 이야기였지만, 니코쨩은『…기다렸어』라고만 했다.

마치 내가 이렇게, 스스로 입을 열 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 같았다.


 장래엔, 유망한 의사가 된다.


 그것이 내 인생. 정해진 루트.

지금은, 그 루트에 따라, 나는 그저 걸어가기만 하고 있다. 확실히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지워지지 않는 답답함이 남아있었다.

그 답답함 때문에, 집 안의 공간이 뿌옇게 보였다. …나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알고 있어. 대형 병원 원장의 딸이잖아」


 그래, 그게 내가 태어난 가계. 음악가의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한 날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다들 내게 말했다. 부자라서 좋겠다, 라고. …뭐든지 살 수 있겠네, 라고.

 확실히 무엇이든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아무리 돈을 준비해도,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꿈과 친구. …그야 그렇겠지. 애초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던 것들을, 나는 예전부터 바라고 있었어… 언제까지나… 쭉, 예전부터.                                                              


「……하지만,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 꿈이, …있었어…」


 내 말에, 니코쨩이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내 손가락이 연주하는 소리는, 내 단조로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많은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그려질 뿐인 평범한 색이 아니라, 덮여 씌워지고 씌워져서, 어느 샌가 검은 벽이 되어 있었다.


「…마키쨩에게, 꿈…?」


 이 학교에 발을 내딛었을 때, 내가 버린 것은 나의 꿈이었다.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발을 디딘 앞의 세계는, 분명 내게 있어 지루한 것이라고.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있을 곳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시시한 장소보다도, 내 집 쪽이 훨씬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니시키노 가에 있어, 그저 그 공적을 이어갈 뿐인 입간판에 불과했으니까.


 말문이 막혔다.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내 뺨을, 따뜻하고 작은 손바닥이 쓰다듬어 주었다.


「……마키쨩에게도, 꿈이 있었어…?」 


…따뜻한 목소리와,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마치 동생에게 마음을 물어보는 듯한, 그런 어조로.

 니코쨩의 빨간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거기에 동조하듯이, 눈이 충혈 되는 느낌이 들었다.

서서히 뜨거워지고, 왠지 코끝이 찡해졌다.


「응…」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따윌 말해봤자, 돌아오는 건 동정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내 인생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설교를 원하는 것도, 위로의 말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히 듣고 있어줄 존재가 필요했어.

…하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얘들하고는 이야기가 맞질 않았으니까. …그야, 모두 곤란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나는 그저, 『그랬구나…』라며 들어주길 바랐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좋았다. 의사의 딸이니까, 그런 게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니시키노 마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어.


 그런 사람 따윈,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니코쨩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버렸어.


어차피 모두 타인이야, 이런 제멋대로인 이유를 내걸고,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솔직하지 않은 것을 넘어, 나 혼자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듯한 고독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없었다.

사람들과 사귀는 방법이나, 기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법을. …내가, 듣고 싶었던 것들을.


 그런 내게, 니코쨩은 자신의 꿈을 들려주었다. 자신의 과거를 알려주었다.

그 따뜻하고도 부러운 꿈 이야기는, 내 차가운 마음에는 완벽한 온도였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라면, 부끄러운 생각들을, 말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에게라면, 나는… 내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가 좋아서… 음악을 하고 싶어서…


 ……――――난 말야,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어… 그게 내 꿈이야…」


처음으로, 부모님 이외의 사람에게, 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이야기했다.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마음이었다.

 말을 입으로 꺼내니, 이상할 정도로 쉽게 눈물이 흘러넘쳤다.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니코쨩은, 놀란 듯 눈을 깜빡이더니… 내 눈을 닦아주지 않고, 그대로 눈물이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살짝 몸을 이쪽에 기대어, 스치듯 겹쳐지는 서로의 어깨.


…옆에 붙어있는 체온이 따뜻하다…

 니코쨩은, 「…멋진 꿈이 있었구나」라 말하며, 따뜻한 미소를 띠면서, 무릎을 껴안고 그곳에 볼을 기대었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듯한 자세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언제나 설교하는 말투였던 꼬맹이 선배는,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도, 지금은 제대로 포기하고, 확실히 의사가 되기로 정했어」

「…응, 멋지네」

「……피아노는 취미로 계속하기로 했어」

「마키쨩, 피아노 잘 치니까. 작곡도 잘 하고」

「…피아노만이, 내 장점이었어. 예전엔」

「……후후. “예전엔”?」


「…지금은, 머리도 좋고, 예전보단 자랑할 것도 훨씬 많아졌고… 난, 머리가 좋으니까」

「왜 두 번 말하는 거야」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나, 예전엔 아빠를 좋아했던 것 같아」

「……응」


「…내가 쓸쓸해하지 않도록, 비싼 것이라도 뭐든지 사줬어.

 놀러 가자는 약속이 있어도, 일 때문에 가지 못한 날들도 많이 있었어.

 …하지만, 그런 날은, 밤늦게 녹초가 돼서 돌아와서도 사과를 하러 왔어.

 나는 삐져서, 무시하고 자는 척을 했지만… 아빠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사과를 하니까…

 아빠가 방에서 나간 후에, 솔직하게「괜찮아」라고 말해주지 못했던 게 분해서 울기도 했어」


「……응」


「시간이 흘러 몇 번의 생일이 지나고, 몸이 커질수록 동시에 마음도 이상한 의미로 어른이 되어버렸어.

 아빠와 엄마와 그다지 말을 하지 않게 된 거야. …주변 아이들과도, 말을 하지 않게 됐어

 …나는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고… 멋대로 결정짓고, 선을 그었어. 딱딱한 모래 위에 말야… 이렇게」


 나는 나뭇가지를 들어, 니코쨩과 나의 사이에 하나의 선을 그었다.

분명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선을 그어왔겠지.

 

 …먼저 포기했던 건, 나였을지도 몰라…


「…수험 전이었어. 마음을 먹고, 아빠에게 내 꿈 이야기를 했어.

 그리고 싸우게 돼서… 그때부터, 왠지 전보다 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서…

 슬펐어. …나는 아빠에게 있어 뭘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와서…」

「응」

「…나 같은 건, 분명 어찌 되든 좋다고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어. …사랑받지 못하고 있을   거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응. 하지만, 사실은 전처럼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아빠가, 들어줬으면 하는 곡들도 잔뜩 있어…」

「……」


 니코쨩은, 대답을 해주는 것을 멈추었다.

 눈꼬리에 맺힌 내 눈물을, 니코쨩이 손으로 닦아주었다. 뿌옇게 흐려진 눈앞에 비쳤던 것은, 내가 그었던, 남들과 나를 가르는 경계선.


모래 위에 그러진 그 선을, 니코쨩은 손으로 스윽 지워버렸다.

 이상하게도,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경계선.


「…분명 마키쨩의 아빠도, 네가 눈치 채지 못한 곳에서 마키쨩을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에?」

「…네 성격은 분명, 아빠를 닮았을 거라 생각해.

 좀처럼 솔직하게 되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지만… 가족 간의 인연은 말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거야」

「……」


「그리고, 그런 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깨닫게 되는 거지」


 마치, 어른이 말하는 대사 같았다. …대사는 멋진데, 니코쨩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서…

무심코, 「…뭐야 그게」라며 울며 웃고 말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이런 시간이었다.…

동정이라든가, 현상 타파라든가… 돌파구를 찾는 방법이라든가… 그런 걸 원했던 게 아냐.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나, 현실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

이젠 나도 납득하고 있고, 다른 길로 나아간다고 해도, 내가 꺾이게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줄곧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답답함을, 토해낼 만한 그릇이 필요했던 거야.


「마키쨩이 앞으로 피아노를 칠 때는, 니코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게. 그리고, 보는 거야」

「…니코쨩, 제대로 노래할 수 있어?」

「응, 피아노에 턱을 괴고, 귀엽게 웃으면서 노래할 거야」

「그렇게 하면 앞을 등지고 부르게 되잖아?」

「모두 앞을 보고 노래를 부르면, 마키쨩이 쓸쓸하잖아? 구석에서 혼자만 피아노 앞에 있게 되니까」

「……」


 …이상한 사람.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을 거야 절대로.

 하지만, 이런 무심한 배려가, 그저 따뜻하고… 처음이라… 기뻤다.


 눈치 채지 못했지만, 또 살짝 눈물이 나온 것 같다. 주륵, 하고.


「어쩔 수 없네」라 말하며, 니코쨩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하듯이 내 눈을 닦아주며, 「뚝」하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래, 움직이지 말고」라며 다시 눈물을 닦아줘서, 저항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얼굴에 닿은 손수건에서, 니코쨩의 냄새가 났다.

…니코쨩의 냄새, 기억하고 만 내가 살짝 부끄러웠다.


 그날 돌아가는 길에선, 잔돈밖에 들어있지 않은 지갑에서, 120엔을 꺼내, 단팥죽을 사주었다.

 목이 쓰릴 정도로 달달해서. 입 안에 퍼진 단맛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니코쨩의 옷자락을 잡고, 발걸음을 맞춰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눈치를 챘다. …니코쨩의 보폭은 좁고 작아서, 발걸음도 느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처음으로 공터에 들렀다 돌아갔던 길… 니코쨩의 보폭에 맞춰서 걸어가려고 했었다.

 둔해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발걸음. …분명 니코쨩의 보폭이 작았던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보폭을 작게 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거기에 맞춰주던 건, 니코쨩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묻지 않으며, 나 스스로 마음을 이야기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려, 주고 있었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것을, 상냥함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잘 보면, 니코쨩은 피부도 하얗고 얼굴도 작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주변의 아이돌 같은 것들 보다, 평범하게 귀여웠다.

입만 다물면 분명 인기 있을 것 같은데―― 같은 말은, 절대 말 못해.


 어째서일까. 옷자락이 아니라, 내 손을 잡아줬으면 하고, 생각해버렸어.

머리로 생각한 내 자신이 바보 같고, 부끄러워서.

 180도 돌아서 니코쨩이 보이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랬더니, 팔을 꽉 잡아당겨서. 무심코「붸에엣…」같을 말을 하고.


「듣고 있어? 니코의 이야기!」

「…에? 안 들었는데…」

「아니, 그건 좀 들어두라고. 정말 친해지기 힘드네, 넌」

「……생각할 게 있었어」

「남의 이야기는 마음의 눈으로 듣는 거야. 니코가 말을 시작했으면 이쪽을 보고 들어」

「걸어 다닐 때는 앞을 보지 않으면 위험하잖아. 니코쨩을 보고 있으면 전봇대에 부딪힐지도 몰라」

「그럼 적어도 앞을 보고 걸어가면 되잖아. 왜 얼굴을 돌리고 있는 건데」

「그건…」

「그건?」


니코쨩의 얼굴이 가까우니까 보고 있을 수가 없잖아, 같은 말. 내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말문이 막힌 나는, 다시금 눈을 돌리고 말았다.


「흐흐응-, 마키쨩, 니코가 귀여워서 똑바로 보지 못하는 거지? 후훗」


니코쨩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라… 이상하게 싫지 않아.

남들과 붙어서 걸어가는 것 따윈, 전에는 싫어했는데. …이 사람의 곁은, 싫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향긋이 피어오르는 달콤한 냄새가, 나를 진정되게 만든다.


「…그래. 그럼 안 돼?」

「에」


 될 대로 돼라, 라고 생각해서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이 한 마디.

그런데, 니코쨩은 방금과는 다르게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그 얼굴을 보고, 무심코 당황하고 말았다. …뭐, 뭐뭐뭐뭐뭐야, 토마토 같은 얼굴이나 하고선…!

「…자, 잠깐… 왜 갑자기 빨개지는 거야, 니코쨩…」

「읏… 아, 안 그랬어…! 그보다, 너야 말로 머리카락 빨갛잖아」

「그건 원래 그랬어. …그쪽이야 말로, 눈동자 빨갛잖아」

「니코도 원래 그랬어…… 이쪽 보지 마」

「그쪽이 보니까 보는 거잖아. 다른 쪽 보라구」

「……네가 먼저 하면」


 말, 해볼까.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그 단어를. 그저 세 글자뿐인 단어이지만.


「…있지, 니코쨩」

「…이번엔 뭔데. 좋아한다던가 그런 소리는 하지 마」

「하아아아!? 자의식 과잉도 적당히 하란 말야, 의, 의미를 모르겠어…」

「목소리 뒤집어졌다고. 그래서, 뭔데」


 얼굴이 새빨개진 니코쨩이, 곁에 있었다. …서로가 헤어질 교차점까지는, 앞으로 조금.

 거기에 도착하기 전까지,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어.


「……고마……―――」


 하지만, 바보 같은 나에겐, 조금 허들이 높았던 것 같다.


  …『고마워』라고… 단지 그것뿐인 단어인데도 말이지.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내 마음을…, 열어줘서 고마워.


 …당신에 대해, 가르쳐줘서 고마워…


 내가 버렸던『꿈』을, 지금은 다시 주워들어, 마음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어.


…아아, 안 되겠네…「세 글자」로 전부 전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단어라… 도저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무리 같아.


「……아무 것도 아냐」

「우와, 나왔다. 『있지 사기』 말을 먼저 걸어놓고 말을 하지 않는 제일 짜증나는 녀석」

「흥, 그러던가」

「…뭐, 상관없지만!! 어차피 쓸데없는 이야기잖아?」

「그래, 어차피 별것 아닌 이야기야」


결국 말하지 못한 난 얼마나 겁쟁이인걸까.

 남에게 감사한다든가 그런 거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나는.


 하지만, 니코쨩의 얼굴을 보고 이해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말, 사실은 눈치 채고 있었지?…그야, 이렇게나 웃고 있는걸.

 그 웃음에 이끌려, 나도 웃었다. 서로 답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별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들의 사이에「“고마워” 같은 건, 필요 없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멋쩍은 듯, 살짝… 뺨을 붉히며, 오늘은 함께 붙어 돌아갔다.


 이미 그곳엔, 내가 그었던 마음속의 경계선은 없었다. 당신과의 거리는, 제로가 되었다.

 

처음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나 스스로 찾아낸 정답이었다.




 ▽



 그날 집에 돌아왔을 때. 거의 동시에 아빠가 돌아왔다.

현관에서 마주치게 되어, 아빠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 나를 보았다.


 …나도, 순간 움찔해버려서, 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게 되었다.

아빠와는 수험 전의 그때부터, 제대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매일매일 둘 사이의 도랑은 커져만 갔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에게서 눈을 돌린 후, 현관에서 구두를 벗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이, 내 쪽을 봤으면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똑같다.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가방 손잡이를 꽉 쥐었다.

…심장이 쿵쿵 뛰어서, 찢어질 것 같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쥐어졌지만, …그래도…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예전에는 당연한 듯이 말을 했었지만.



「……어…서와, 아빠…」


내가 뱉은 말에, 아빠는 그대로 멈추셨다. 놀란 듯이 뒤를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대각선 아래를 바라보며, 현관에 그저 서있기만 했다. …그저 이 정도의 인사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고 만 부녀.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예전에,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 …아빠는 어릴 적에, 공부를 엄청 싫어했다고.

부모님께 압박을 너무 많이 받아서, 항상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대.


 의사 같은 건 절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분명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잖아.


 그렇다면, 어째서 의사가 된 걸까. 밤에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 속에서.

어떤 급한 연락이어도, 어째서 가장 먼저 병원에 달려갔던 걸까.


 …이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나날이, 있었던 걸까…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의사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이 사람은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오는 걸까…


…내가 모르는 아빠의 이야기, 좀 더… 조금 더 들어 보고 싶다고… 지금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오랜만에 듣는 구나… 마키가 먼저『어서와』라고 말하다니」


돌아온 대답은, 낮지만 따뜻한 아빠의 목소리. 나는 얼굴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아빠도 나처럼, 눈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오랜만에 들었다. 아빠가 「마키」라고 불러주는 것을.

 왠지 울 것 같아졌지만. …아냐, 여긴 울 곳이 아니니까.


 아빠와 나의 사이를 그었던, 경계선.

 …그것을 나는 오늘…, 스스로의 손으로 지워보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내 마음을… 이 사람에게 전한다. 「있잖아, 아빠……」들어줘, 아빠. 제대로 들어줬으면 해.


「……나, 언젠가 아빠보다 대단한 의사가 될 거야…」

「……」

「…물론, 공부만 하게 되는 건 슬프니까 아빠가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아빠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나도 반드시 제대로 된 의사가 되겠어.

 …―――그러니까……」


 말하지 못했던 말. 다시 한 번만, 남아있는 용기를 쥐어짜 내본다.


「…다음에, 내가 만든 노래… 들어줘」


 가슴이 또 답답해진다. …분명 아빠는 내가 만든 노래 따위에는 관심 없을 테니까.

또 거절당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지만,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빠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답이 아니었다.


「……“사랑해 만세” 말이냐?」

「엣?……」


 …이번엔, 제대로 눈을 마주쳤다. 아연해진 나와, 뭐든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아빠.

내가 스스로 곡을 들려준 적은 한 번도 없었을 텐데.


 …그래서, 아빠에게서 내가 만든 곡의 제목이 나온 것에, 놀란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아빠는, 「역시 그렇구나」라며, 예전처럼 상냥한 표정으로 웃으셨다.


 커다란 손을 내게 뻗고, 두 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어… 좋은 곡이구나」


 그렇게 말하고선, 아빠는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아빠의 방으로 들어가셨다.

하지만, 확실히 보았다. 문이 닫히는 아주 작은 순간. 아빠의 예전부터 변하지 않는 “버릇”을.

아빠는 기쁠 때나 부끄러울 때에, 자기 머리를 긁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어라? 마치 내 이야기 같이 들리네.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노래에 대해 말한 적 없었으면서…

 …곡의 제목까지 기억할 정도로, 내 연주소리를… 언제나 들어주고 있었다…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마음이 떨렸다. 기뻐서… 손도 떨려왔다.



「…분명 마키쨩의 아빠도, 네가 눈치 채지 못한 곳에서 마키쨩을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에?」

「…네 성격은 분명, 아빠를 닮았을 거라 생각해.

 좀처럼 솔직하게 되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지만… 가족 간의 인연은 말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거야」

「……」


 

 ――솔직하지 못한 아빠와…, 나는 정말 닮은 것 같다. 내 성격은,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듯하다.

 공터에서 니코쨩이 했던 말.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그렇게 느끼고 있다.


긴장으로 굳은 몸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내 눈에선 기쁨의 눈물이 떨어졌다.

 현관에서 울고 있는 걸 엄마에게 들켜서「왜, 왜 그러니 마키쨩」이라며 당황시키고 말았다.


……굳게 닫혀있던, 내 고집불통인 마음의 문이… 이날, 열렸다.




 …내일, 니코쨩을 만나면 오늘 있던 일을 이야기해보자.

분명 자기 일처럼, 그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줄 거야.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두근, 두근…―― 그렇게 작게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


이 소리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이름이 좋으려나.

 …그 대답에 다다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어서 그 사람과 만나고 싶다. 지금 당장 만나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 사람의 팬이 되어버린 것 같아.


「…니코니코니ー…」


 정말, 신기한 주문. 외친 것뿐인데, 입 꼬리가 올라가게 된다.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독점하고 싶어 했던 마법의 주문. 하지만 그 행복을, 그 여자아이는 스스로 모두에게 전파했다.


 앞으로도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게 되겠지.



 내 고교 생활은 아직, 막 시작했을 뿐이다. 이 앞에는 과연 어떤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 눈에 비치는 경치는 내년 이맘 때, 어떤 식으로 바뀌어 있는 걸까.


 …아직은 잘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니코쨩이 꿈을 이뤄냈을 때, 분명 내 꿈도 이뤄질 거야. …그 사람이, 우주 넘버 원 아이돌이 될 수 있기를.

꿈이라기 보단, 마치 소원처럼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의 꿈을, 나의 꿈처럼 느끼고 있으니까…








「자, 마키!! 좀 더 기합을 넣어서!!」

「알고 있어, 최고로 귀여운 미소를 보여주겠어!」

「우왓, 나르시스트! 말해두겠지만, 니코가 더 귀여우니까 말야!」

「왜 거기서 승부욕을 불태우는 건데!? 의미를 모르겠네. 니코쨩 같은 건 전혀 귀엽지 않거든!」


「하아!?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귀엽지 않다고 했어! 미간에 주름이 잡히게 만드는 아이돌 따위 누가 응원할까보냐」

「뭐야, 너 저번에는 니코의 험담을 하는 녀석들에게 싸움까지 걸었던 주제에!!」

「!!??읏… 자, 잠까안ー!! 그런 건 비밀로 하는 게 예절 아니야!!??」


「멋진 장면이었어야 했지만, 최후의 최후에 혀가 꼬여버린 소녀의 굴욕…」

「나레이션 그만둬!!」

「『――1학년이라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샨이니꺄!!!』」

「따라하지 마!!!」

「크크큭... 생각하니까 또 웃기네… 거기서 혀가 꼬이냐…」

「웃지 마!!」

「후후훗…! 아- 정말, 귀엽네~, 마키쨩 정말 좋아니코」

「장난치지…… 엣??」

「응?」

「에, 앗… 그게……」

「…자, 잠깐. 왜 갑자기 빨개지는 건데, 바보 바보!!! 농담이라니까!!」

「뭐…… 아, 알고… 알고 있어! 그런 거!!!」


 심장이, 두근거리며 이야기한다.

 교문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교문에서 발을 옮길 때마다, 고개를 수그리는 나는 이제 없다고.


 혼자서 등하교를 하지 않게 되었다. 곁에는 언제나 나를 놀리는 작은 거인이 있으니까.

 …현관에서 집을 나올 때, 언제나 부모님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아빠도「힘내렴」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전에는 힘들게만 느껴지던 식탁도, 지금은 어릴 적처럼 웃음이 떠나지 않게 되었고…

아빠에게 시간이 있을 때는, 내 방에 불러, 피아노를 연주해주었다.


 그런 나와 아빠를 보고, 엄마가 문 뒤에 숨어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매일이 아주 조금은, 즐겁게 되었다.


그런 나날을 손에 넣은 것은 나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느낀다.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작은 슈퍼 아이돌이었다고.


「……마키쨩, 또 책 읽고 있어~? 게다가 미국어고」

「미국어라니 무슨 소리야, 영어잖아」


「아메리칸 조크야. …―――그건 그렇고…」

「…재미없는 농담이네. 왜?」


「…전에는 책 읽는 중에 말을 걸어도 전혀 고개를 들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제대로 들게 됐네」

「………」

「…후훗. 또 부끄러워한다」

「시… 시끄러…!」

「아앗ー, 마키쨩 조금 볼이 풀렸어ー! 이제 와서 가려도 늦었다구ー」

「안 풀렸어!! 저, 저기 가라니까, 니코쨩…!!」

「괜찮아 괜찮아, 자, 이럴 때야말로, 니코니코니-야!!」

「의미를 모르겠어」

 






 이 학교에 입학하고, 봄의 벚꽃 잎을 맞으며 아직 싸늘한 바람이 불던 아침.

분홍색의 가로수길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푸르게 그 색을 바꾸어 간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온화한 기온의 나날도 금방 끝나고, 분명 곧 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이 시작되겠지.



 …어느 때라도 들려오는, 떠들썩한 하나의 목소리.

요즘 시대에 리본으로 트윈 테일을 하는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을 거야.

 …딱히 눈으로 쫓고 있던 건 아니야. 저런 눈에 띄는 머리 모양이니까,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 뿐.


 ――같은 변명은 이젠 하지 않는다. …내 눈은, 언제든지 그 사람을 쫓아버리고 마니까.

 작지만, 멋진 등이 그곳에 있다. 그 등에는 상냥한 꿈으로 빚어낸 날개가 돋아 있었다.

…라니, 너무 오글거리려나, 이런 표현.


 두근, 두근 하고,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리듬으로 이 가슴이 고동치고 있다.

이 리듬은, 대체 어떤 박자인 걸까. ……악보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각.

 드디어 내가 있을 곳을 찾아낸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 있어도 괜찮아”라며, 따뜻한 마음에 안긴 것 같은 느낌.


  주위의 초목들이 다음 계절의 도래를 천천히 알려오기 시작했다.

  


  「자, 마키쨩, 하나-둘」


 「…니…… 니, 니코니코니-…」

 「좀 더 기합 넣어서!!」

 「니… 니코니코니ーーーーー!!!」


 「오케이ー!!! 스페셜 큐트니코!!!」 


 

  니시키노 마키, 16세. 부드럽게 물결치는 붉은 눈동자를 보게 되어서, 반짝이는 미소에 빠져들어서…

  나는 오늘도… ―――웃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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